지난 3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끝날 게 확실시된다. 경합주(swing state) 몇 곳의 박빙 판세에다 주(州)마다 다른 우편투표 개봉 일정 등으로 5일 오후(현지 시간)까지 최종 당선자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들은 대부분 '바이든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박빙 승부 지역인 경합주를 중심으로 선거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판세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예상 외로 표를 많이 얻기는 했지만, 트럼프가 패배한 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궤멸적 충격과 중도성향 유권자들에게 외면을 받게 만든 선거 전략상의 판단미스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바이든 캠프에선 이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출범시켜 승리를 세상에 알리고 구체적인 집권준비에 착수했다. 팬데믹, 심각한 경기침체, 기후 변화, 인종 분규 등으로 지금 극심한 분열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의 위기상황 속에서,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가 끝내 선거 불복 상황까지 치달을 경우 초강대국 미국은 심각한 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 중대한 고비에 봉착한 듯 보이는 미국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줄 대선 처리과정을 살피는 것도 이번 선거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최종 판정이 난 것은 아니지만, 조 바이든이 집권할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긴 할까? 한국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2009~2017년) 시절의 대북한 ‘전략적 인내’ 정책을 떠올리며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더 꼬이면서 해결의 길은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관측들도 적지 않은데, 과연 그럴까? 지금 최악이라는 한일관계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은 유지될까? 주한미군은 철수 또는 감축할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얼마로 결정될까? 한국은 미중 패권경쟁이 계속될 경우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반드시 어느 한 쪽을 택해야만 할까? 또 다른 대안은 없을까?

다시 ‘전략적 인내’로 갈까

오바마 정권의 대북 정책을 압축한 단어처럼 회자되는 ‘전략적 인내’란 경제제재 등을 통한 강경자세를 유지하면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아무런 적극적인 변화 시도도 하지 않고 봉쇄상태를 지속하는 대북‘정책’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 없는 전략이라고나 해야 할 ‘전략적 인내’ 기간에 남북, 북미관계는 단절됐으며, 북은 핵무기를 만들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했고, 전쟁 발발 위기도 겪었다. 이에 비해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까지 두세 차례 열어 북미관계의 파격적인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만간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고, 그때의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 바이든 정권이 과거의 그 소모적인 ‘전략적 인내’로 복귀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 때 늘 그랬던 건 아니다. 미국과 북한이 거의 국교정상화 직전까지 갔던, 북미관계 역사에서 두 나라가 가장 근접했던 시기가 민주당 정권 때였고 바이든이 상원에서 미국 대외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할 때였다.

지금 중년층 이상은 기억하고 있겠지만, 2000년 10월 10일 북한군 최고위직(차수)인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국무, 국방 장관과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그때 두 나라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고, 그 달 23일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 준비작업을 했다. 세상을 놀라게 한 이 극적인 진전은 그러나 금방 끝나고 말았다.
그해 11월 초에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플로리다주 개표 논란 끝에 5주가 더 지난 12월 13일 패배를 인정하고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 당선이 확정됨으로써 허망하게 끝났다.
만일 그때 앨 고어가 당선됐다면 북미관계는 정상화 쪽으로 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북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며, 북미관계가 정상화됐다면 남북관계도 정상화됐을 것이다. 그리하여 남북의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고 북한 여러 곳에서 ‘개성공단’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시베리아의 석유 및 천연가스 파이프가 한반도 남북을 관통하고, 서해와 동해 접경해역은 남북 공동어장 및 항로가 되지 않았을까.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낸 민주당의 야심만만한 외교통이었던 바이든도 1993년 이른바 북핵 1차 위기 이후 2000년의 극적인 북미 고위급 교환방문까지의 사태 진전에 깊숙이 관여해왔을 터이다.

바이든의 대북정책, 클린턴? 오바마?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의 부통령이었고, 그 때 대북정책의 트레이드 마크는 ‘전략적 인내’였다. 오바마 정권은 같은 민주당 정권인 클린턴 대통령 시절과도 전혀 딴판인 대북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이것은 ‘전략적 인내’가 민주당 정권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바마 1기 집권 말기에 미국은 대외정책의 중심축을 유럽과 중동에서 아시아로 이동시키는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를 표방했다. 오바마 정권이 겨냥한 것은 급속도로 힘을 키우면서 미국 패권을 위협하던 중국의 견제였다. 그 위기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북한은 지금도 그렇지만 오바마 정권 때도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외부 요인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당사자인 한국 국내사정도 ‘전략적 인내’라는 무(無)전략에 부합했다. 오바마 정권과 집권기간이 거의 겹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도 북한에 대해선 무전략 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니 그 양자관계는 안성맞춤이었다고 해야 할까. 박근혜 정권의 이른바 대북 관련 ‘대박’ 얘기는 남북 간의 대화와 접근을 통한 새로운 돌파구 모색이 아니라 결국은 북의 붕괴를 염두에 둔 낡은 접근을 포장하는 구태의연한 수식어였을 뿐이다. 이처럼 나라 안팎의 조건에 장기간의 무전략인 ‘전략적 인내’가 잘 맞물려 돌아갔다.

이는 2000년 민주당(클린턴) 정권 때의 그 극적인 북미 접근이 당시 김대중 정권 때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따라서 바이든 정권이 문재인 정권 집권기간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하지 않은가. 미국 민주당 정권과 한국 보수정권이 하나의 세트가 되는 조합, 그리고 미국 민주당 정권과 한국 진보정권이 세트가 되는 조합은 대북정책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북이 호응한다면? 바이든 역시 코로나 팬데믹과 최악의 경제 불황이라는 국내 위기, 그리고 ‘거대 중국’의 대두와 공세라는 외부 위기를 대처하는데 자신의 정책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겠지만, 남북한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한미일 공조, 지소미아를 유지할까

바이든 정권이 내년 초 출범할 경우 대외정책의 핵심은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 봉쇄 내지 견제가 될 것이다. ‘투기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을 유행시키기도 한 두 대국의 충돌은 더 이상 피할 수 없으며, 경쟁이 어느 쪽으로든 결착될 때까지 적어도 향후 수십 년간 지속되리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중국 견제·봉쇄를 위해 트럼프 정권은 미국의 국익을 전면에 내세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관세장벽과 군비경쟁, 반도체전쟁, 첨단기술 이전 제재 등 중국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정책을 폈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주적’인 중국만을 겨냥한 게 아니라 나토(NATO) 동맹국인 유럽 각국과 일본, 캐나다, 호주 등 전통적 동맹국들까지 겨냥했다. 주한미군 철수론과 함께, 바이든마저 “갈취”라고 비난했던 엄청난 방위비 증액을 요구당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의 동맹 해체 움직임에 대해 지지자들도 많았지만 공화·민주를 떠난 미국 주류세력의 초당파적 우려와 반발도 불렀다. 트럼프 식의 동맹 해체는 2차대전 이후 유지돼 온 ‘패권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든 미국 스스로 중국 견제-압박-봉쇄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멸적 자충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맹 복원’을 내세운 바이든의 의도는 명백하다.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중국 견제를 동맹국들과의 연대로 달성하고, 그렇게 뭉친 힘으로 미국이 주도한 국제질서·규범에서 일탈해 폭주하려는 중국을 다시 미국적 질서와 통제 속으로 들어오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맹 복원은 미국 패권의 유지, 곧 미국의 경제·군사적 힘의 우위를 지키는 필수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집권 뒤 바이든 정부가 가장 서두를 것은 대내적으로는 코로나19 대처와 국내 경제 붕괴를 막는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해체 직전의 동맹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은 나토 등 군사동맹국들과의 알력 외에 이란과의 핵합의 파기와 파리 기후변화협약 및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이스라엘의 점령지 정착정책 승인 등의 일방적 돌출행위로 동맹 해체를 재촉하는 한편 그가 상정한 적대국들을 (예컨대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을) 뭉치게 만들었다. 리처드 닉슨이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중소 대립을 부추기고 마침내 소련을 고립, 해체의 길로 몰아간 것과는 거꾸로 트럼프는 서로 껄끄러울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같은 배를 타고 미국에 대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바이든은 동맹 복원으로 그런 흐름을 역전시키려 할 것이다.

동맹 중시가 한국에겐 독이 될 수 있다

이 동맹 복원은 한국 및 한반도에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예컨대 2015년 10억 엔을 건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이고 완전한 합의(해결)’를 선언한, 이른바 ‘12·28 합의’가 그런 미국식 동맹 복원의 시도의 한 전형일 수 있다. 한일관계는 한미처럼 동맹관계가 아니지만 미국은 미일동맹, 한미동맹을 통해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을 지향하면서 그 세 번째 변인 한일관계를 한미일 공조라는 이름의 동맹 축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뒤 일본과의 관계를 단절하다시피 하면서 베이징의 2차대전 ‘전승절’ 기념 중국군 열병식에 참가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에 미국 수뇌부는 경악했을 것이다.
그해 12·28 합의를 도출하도록 압력을 가해 박근혜 정부를 중국에서 떼어내 일본 쪽으로 붙게 만든 것은 미국이었다. 그나마 단임 대통령제의 한국 대통령은 자리를 보전했지만, 2009년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했던 내각제의 일본 민주당 정권,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1년도 못 채운 채 쫓겨나다시피 2010년 6월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토야마는 오키나와에 있는 후텐마 미 해병대기지 이전문제와 관련해 그 전에 자민당 정권이 성사시킨 미일 합의(오키나와 내 이전)를 무시한데다 중국, 한국과의 접근을 지향하는 독자적인 ‘탈(脫) 미국, 아시아 중시’를 표방했다가 미국에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

그해(2015년) 2월 27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주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웬디 셔먼은 클린턴 정권 말기에 대북정책 조정관을 지냈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조명록 북한군 차수의 교차방문을 성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동아시아 전문가다.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잘 아는 그가 ‘위안부’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던 한국, 중국을 싸잡아 비난하며 ‘과거사는 잊어라’고 한 것은 결국 한국을 중국에서 떼어내 일본 쪽에 붙여 놓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사로 가면 한편이 될 수밖에 없는 한국과 중국의 접근은 ‘Pivot to Asia’가 겨냥한 중국 견제와 이를 위한 한일 및 한미일 공조(동맹) 강화 전략과 배치된다. 그에 앞서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도 한국방문 때 “한일이 역사를 극복하고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좋다”고 했다. 모두 과거에 집착 말고 미래로 가자는 얘긴데, 케리 자신이 말한 과거사 ‘극복’도 없이 미래로의 ‘진전’이 가능할까. 일본의 과거사 청산 요구를 값싼 박수나 챙기려는 대중영합주의로 매도하며 미래로의 전진을 강조한 미국의 의도는 뻔했다.

한일관계에서 이런 패턴의 문제 해소는 2차대전 뒤 미국이 한국·일본을 점령한 이후 끊임없이 되풀이돼 왔으며, 바로 이것이 한일 간 문제의 근본이다. 아베 신조 정권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징용공)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판결과 그것을 철회하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듣지 않는 한국 정부를 싸잡아 ‘국제법 위반’이라 비난하며, 첨단기술 관련 수출규제까지 하고 나선 사태의 배경에 바로 이런 패턴의 한미일 정치인들 간의 담합이 깔려 있다. 그럴 때 미국은 언제나 일본 편이었다. 일본 우익이 한국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떠들어대는 근거는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 조항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과거사를 둘러싼 동상이몽과 한계

일본 측은 또한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앞세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종결하는 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미국은 일본의 전후 재건을 돕기 위해 피해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을 극도로 제한했다. 일본 정부는 그것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그것이 배상 청구 불가의 이유가 될 순 없다. 게다가 당시 강화조약에서 미국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묻지도 않았다. (한일협정에서도 일본은 식민지배와 침략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당시엔 그것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한일협정 체결을 주선하고 압박한 미국은 그것을 묵인했다) 게다가 그 강화조약 회의장에는 가장 큰 피해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대륙과 대만 정부 모두)을 아예 초청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전승국 미국과 패전국 일본이 피해국가들과 다른 주요 전쟁 당사국들을 제외시키고 그들끼리 체결한 조약이었다.

과거에 집착 말고 미래로 가자는 웬디 셔먼의 압박은 한일협정 이후 늘 그래온 패턴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베 정권이 한국을 국제법 위반이라 몰아세우는 것은 ‘위안부’와 징용공 배상 청구가 한일협정과 12·28 합의에 명기한 ‘불가역적이고 완전한 해결’ 조항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논리의 연장이다.

민주당 소속이자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이었고 부통령까지 지낸 바이든이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관계 복원을 서두를 때 한일 공조 내지 한미일 공조를 우선할 경우 꼭 같은 패턴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근대 이후 한반도의 비극은 미국과 서양 열강들의 아시아 진출(침략) 때 늘 일본이 그들의 교두보가 되고 주변 이웃나라들을 그 하위체제로 편입시킨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일본 패전 뒤 미 점령군이 그랬고, 1965년 한일협정 때도 그랬으며, 이후 12·28 합의와 지소미아(GSOMIA)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국 정권들 역시 늘 한국 또는 한반도를 일본이라는 거점의 하위 부속체제로 편입시키고 과거사를 묻어버린 채 공조와 협력의 미래를 강조했다. 미국의 국익 우선에 일본도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그 패턴을 바이든 정권도 고집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한국 정부는 알고 있을까.

그 질곡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잘못된 패턴에서 벗어나려면, 한국 또는 한반도가 한일 공조라는 이름 아래 일본의 일부 또는 하위체제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한국 또는 한반도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되, 일본의 일부 또는 종속국가로 간주돼선 안 되며, 일본과 대등한 독자적인 주체로 대접받는 존재로 거듭나야 된다. 한국의 객관적인 위상 자체도 이미 그렇게 변했다. 한국은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그런 변화를 토대로 대등하고 독자적인 주체로 다시 서지 못하는 한 늘 일본의 이익이 우선되는 한일 또는 한미일 공조라는 레토릭 속에 하위체제로 머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점을 당당하게 바이든 정권에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이나 러시아, 인도, 서남아시아 그리고 중동, 유럽 등 세계 전역의 국가들과 연대하면서 중견국가로서의 독자적인 활동영역을 구축함으로써 대등한 협상 주체로서의 지위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

“Don't make us choose!”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말라

“아시아 나라들은 미국을 아시아 지역에 사활적으로 중요한 이해를 지닌 ‘레지던트 파워’로 생각한다. 그런데 중국은 눈앞에 있는 대국이다. 아시아 나라들은 미중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는 걸 바라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가 한 말이다. 우리로 하여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마라(Don't make us choose)는 것이다.

일본의 싱크탱크 ‘신외교 이니셔티브’의 시니어 연구원인 사루타 사요(猿田佐世)는 월간지 <세카이(世界)> 11월호에 쓴 글 ‘미중 사이에 끼어 있는 일본이 택해야 할 진로는’에서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을 거론했다. ‘우리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지 마라’ 외교를 잘 실천하고 있는 모범 사례로 꼽은 것이다.
범죄 소탕을 위해 과도한 폭력을 휘두른다며 국제적인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남중국해 섬 영유권 문제로 중국에 굴복하는 듯하면서 코로나19 수습을 위한 지원물품들을 받아내기도 한다. 거의 쫓아내다시피 한 미국의 힘을 빌리기 위해 필요할 때는 외국군 주둔을 허용하지 않는 헌법 규정을 일시적 방문주둔 형태로 피해가기도 하면서 필리핀 다수 국민의 이익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그의 지지율은 80%대나 된다는 거다.
사루타 연구원은 일본이 바로 두테르테의 필리핀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한국이야말로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한승동/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