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말에는 ‘5심’이 있어야 한다. 말이 열매를 맺으려면 씨앗을 잘 심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心)이 말의 씨앗이다. 바로 그 씨앗이 좋아야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니까.

씨가 아무리 좋아도 결실을 거두려면 밭도 좋아야 한다. 말의 밭은 무엇인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관계다. 사람 사이의 마음 상태가 말의 밭이다. 마음이 통해야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듯 밭이 좋아야 말이 결실을 맺는다.
말의 씨앗과 밭 가운데 어느 게 더 중요한가. 내 생각엔 둘 다이다. 어느 한쪽을 포기하고서는 말을 잘할 수 없다. 씨도 좋아야 하고 밭도 좋아야 한다. ‘관계’라는 밭에 씨를 뿌려 거두는 열매가 ‘말’이니까.

말을 못하는 사람은 관계를 문제 삼는다. 밭을 탓하는 것이다. 하지만 밭은 내 의지와 역량으로 제어하기 힘들다.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린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말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
내가 모신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 “경영을 잘하려면 ‘3심’이 있어야 한다. 욕심, 의심, 변심이다.” 말을 잘하려면 다섯 가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5심’이다.

#1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

말을 잘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 잘하고 싶어 해도 잘할까 말까인데, 잘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으면 말을 잘하기는 어렵다.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드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중요한 발표를 망치고 상사에게 호되게 질책을 받았을 때, 준비해간 말을 깜빡했는데 누군가 그 내용으로 주목받았을 때,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을 때 등등. 계기는 자주 주어진다. 스스로 동기부여만 하면 된다.

말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말을 준비하고 연습한다. 그리고 자주 한다. 그러다 보면 말을 잘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말을 잘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드물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될 일을 하지 않는다. 왜? 우리 사회는 말 잘하는 걸 높이 쳐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말하기의 블루오션이고 무주공산이다. 말뚝만 박으면 된다.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다. 내가 강연 시장에서 잘 나가고 있는 이유다.

간단하다. 남이 시키기 전에, 내 차례가 되기 전에 먼저 말하면 된다.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를 지명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면서, 내 순서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지 말고, “제가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먼저 한마디 하겠습니다.” 하면 된다. 호시탐탐 말할 기회를 노리면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 할 말을 준비하고 연습해둬야 한다. 어떻게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는지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기를 권한다. 어떻게 배우나. 나의 명저(?)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으면 된다.

#2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말을 잘하기 위해 또 하나 필수불가결한 마음이 있다.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기연민이 필요하다. 말을 잘하려면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잘 길어 올린다. 자기 안에 길어 올릴 생각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변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자기 안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탐색하는 걸 즐긴다. 그리고 기어코 끄집어낸다.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눈치 보지 않고, 자기 검열이 심하지 않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한다. ‘그까짓 거 말하면 되지’란 생각으로 말한다. 하지만 자신을 못 믿는 사람은 나설까 말까 망설인다. 머릿속으로만 온갖 말을 다해본다. ‘이렇게 말하면 남들이 뭐라 할까’ 과도하게 의식한다. 그리고 나중에 ‘말할 걸’ 하면서 후회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나도 저 정도는 말할 수 있는데’ 빈정댄다. ‘왜 너희들만 말해?’ 하면서 화를 낸다. 누가 말하지 말라고 그랬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말을 잘하려면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할 말이 많다. 감추기 시작하면 할 말이 없다. 자신의 약점과 허물을 말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런 말일수록 재밌다. 그런 말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열어야 나도 편하고 상대도 편하다. 먼저 속내를 털어놓아 보라. 감정과 느낌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빈틈도 보여줘라. 상대는 나의 실패담을 들으며 경계를 풀고 오히려 인간미를 느낀다. 말은 ‘잘난 체’보다 ‘못난 체’가 제대로 먹힌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호평이나 혹평에 흔들리지 않는다. 호평을 받았다고 우쭐하지도, 혹평에 의기소침하지도 않는다. 받아들인 건 받아들이고 무시할 건 무시한다. 받아들일 건 흔쾌하게 받아들이고, 무시할 것은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쭈뼛쭈뼛하지 않는다. 기탄없이 말할 수 있다.

끝으로, 자신을 믿는 사람은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말을 잘 하고자 하는 욕심은 있지만,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보이려고 무리하지 않는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꾸미지 않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고, 내 수준이 이 정도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그냥 말한다.

#3 성취하고 싶은 마음

나는 자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말을 잘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를 사랑하는 건 말 잘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영향을 끼치는 말을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 알고 저항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탐구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도를 찾고, 뜻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한다. 사람을 모으고, 설득하고, 조직하고, 권력과 싸우고, 권력을 잡고, 그리고 정책을 실행한다.”

리더가 성취하는 것의 대부분은 말로써 이루어진다. 리더는 말하는 사람, 팔로어는 듣는 사람이다. 리더는 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팔로어에게는 그것이 해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런 점에서 리더의 말은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리더가 말하는 이유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을 모으고 설득하고 권력을 잡고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말했다.

모든 말에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에 충실한 말이 좋은 말이다. 재미와 친교를 위한 말은 농담과 유머에 충실해야 한다.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고 설명해야 할 때가 있고, 원인 분석과 문제 해결을 위해 말해야 할 때도 있고, 공감과 설득을 위한 말하기도 있다. 또한 칭찬과 꾸중, 거절, 사과, 지시, 보고, 부탁 등 다양한 목적에 따라 내용과 방법을 달리해서 말해야 한다.

목적 있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말하기 전에 먼저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말하려고 하는지’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말할 때는 ‘내가 지금 목적에 부합하는지’ 상기해봐야 한다. 또한 말한 다음에는 ‘내가 말한 목적을 달성했는지’ 복기해봐야 한다. 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면 반성하고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

나는 강의하면서 이전 강의까지 하지 않았던 말을 한 마디라도 추가하려고 한다. 그 한 마디를 찾는 과정이 즐겁다. 한 마디를 찾았을 때 기쁘다. 그 한 마디를 강의 때 써먹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매번 그만큼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내 말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말이 말로 끝나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 말의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저러다 말겠지. 이 시간만 넘기면 되겠지’ 하며 리더가 말한 내용을 실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청와대나 회장비서실 조직에서는 대통령이나 회장의 말의 이행 여부를 챙기고, 그 결과를 가지고 포상하거나 질책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고 듣는다는 것은 헌신을 요구한다. 말이 결실을 보려면 누군가 일해야 한다. 부하는 상사를 위해서, 상사는 부하를 위해서, 구성원은 회사를 위해서, 회사는 구성원을 위해서, 직원은 고객을 위해서 행동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소통만 외치고 바뀌는 건 없다. 그런 점에서 소통의 다른 말은 고통인지도 모른다.

#4 배려하는 마음

말에는 상대가 있다. 내 말을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말의 성패를 가늠한다.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나를 내려놓은 그 자리에 상대를 올려놓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절제와 상대를 향한 존중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겸손해야 한다.

내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내게 ‘당신은 겸손한 것이 매력’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겸손하게 보는 이유가 있다. 내가 공식적으로 말을 처음 한 것은 <김어준의 파파이스>라는 팟캐스트였다. 이 프로가 나의 말하기 데뷔 무대다. 200만 명 이상이 이걸 봤다. 여기서 나는 매우 겸손했다. 처음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엄청 떨었고, 뭘 해야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그게 사람들 눈에 겸손하게 보였다.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보는 이유는 또 있다. 내 말은 많은 부분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한다. “나는 대통령 연설문을 쓴 사람이 아니고 대통령께 연설문 쓰는 법을 배웠다.”고 말할수록 사람들이 겸손하다고 했다. 나는 이 분들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래서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또 그렇게 겸손한 사람이 됐다.

나는 쓴 게 아니고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구술을 듣고 그것을 글로 옮겼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써놓은 책이나 글을 읽고 그것을 요약, 정리했을 뿐이다. 내 말을 하고 내 글을 쓴 게 아니고 그분들의 말과 글을 듣고 읽었다.

말에서 겸손하려면 내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남의 말을 듣고 그의 마음과 사정을 읽는데 주력해야 한다. 나는 요즘도 잘 듣기 위해 노력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으면 빈 공간 없는 주차장처럼 답답하다. 소통이 안 된다. 내 안에 빈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 배려가 말하기의 출발점이다.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성취하고 싶은 마음은 소통을 위한 준비이고, 배려하는 마음부터가 소통의 시작이다.

배려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화가 나도 막말, 폭언을 삼간다.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안다. 또한 내가 한 만큼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도 잘 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도 원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례하지 않다. 나아가 말에서 소외된 사람을 표 나지 않게 배려한다. 그에게 묻고 대화로 끌어들인다. 그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

배려하는 사람은 또한 쉽고 간결하게 말한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보다는 상대가 어떻게 들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눈높이를 맞춰 말한다. 또박또박 말한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말의 무게중심이 듣는 사람에게 가 있다.

배려하는 사람은 일방적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상대에게도 말할 기회를 준다. 내 말은 부족하다 싶을 만큼만 하고, 상대 말에 내 말을 보태거나, ‘이런 뜻이죠?’하며 해석하고 부연하거나, 상대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중심에 놓고 말하는 것이다. 반박을 하더라도 먼저 동의해준 다음에 하고,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말을 많이 한다고 설득되지 않는다. 주도권보다는 주파수가 중요하다.

배려하는 사람은 말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 무엇을 가지고 즐겁게 해주느냐, 우스갯소리를 잘한다. 유머와 조크, 재치로 사람들을 웃긴다. 또한 다양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한다. 대화 소재가 풍부하다. 아울러 축하하고 칭찬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덕담에 인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배려하는 사람은 무조건 내가 이겨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 맞나 보다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한다.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보다는 함께 이익이 되는 방향을 찾는다. 그래서 양보해야 할 때는 양보한다. 그럼으로써 더 큰 걸 얻는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 배려해야 한다.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5 진실한 마음

끝으로, 참된 마음,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리더에게는 진심, 진정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진정성을 느낄까. 우선, 솔직한 말에서 진정성을 느낀다. 진정성은 많이 아는 것, 유창한 말솜씨와는 무관하다. ‘진정성’이란 말은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했는데, ‘너 자신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나답게 말하면 된다. 거짓과 꾸밈이 없을 때 우리는 진정성이 있다고 한다.

말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솔직함과 함께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 말만 번지르르한, ‘말 따로 행동 따로’여선 안 된다. 말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고, 말한 대로 실천하면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말재주가 없고, 말을 잘하지 못해도 리더로서 존경받는다.

또한 남이 내게 해주길 바라는 것과 내가 남에게 하는 게 같아야 한다. 이 사이의 불균형이 그 사람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반발과 반항심만 불러일으킨다. ‘내로남불’이 되는 것이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 사이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시시때때로 말이 바뀌는 사람에게서는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나아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는 말도 다르지 않아야 한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하는 말과 낮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다.

진정성은 또한 일에 대한 열정과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 느껴진다.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완성도 높게 잘하고 싶은 마음, 그런 열정이 있고, 부하직원을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 그런 애정이 깃들여 있는 말에서 우리는 진정성을 느낀다. 회사에서 상사가 후배 직원을 나무랄 때, 이 친구가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그러는 것인지 아닌지는 말투와 눈빛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런 열정과 애정이 느껴질 때 진정성을 느낀다.

말은 듣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 말을 통해 상대를 도우려는 마음 말이다. 상대가 모르는 걸 알려주든지, 상대를 즐겁게 해주든지, 상대에게 용기를 주거나 위로를 해주든지, 상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든지, 상대로 하여금 통찰을 일으키게 하든지 말이다. 그리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고 의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랬을 때 말은 열매를 맺는다.


강원국 필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는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말과 글보다 미소 짓는 표정이 더 인상적이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각종 강연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