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8개월에 걸친 제2차 아베 정권을 떠받쳐 온 것은 누구인가? 1년간의 제1차 아베 정권(2006년 9월~2007년 9월)까지 합하면 일본 정치사상 최장기 집권기록을 세운 아베 정권 지지율의 가장 큰 특징은 좀체 내려가지 않는 ‘단단한 저변’이었다.
월간 <세카이(世界)>(2020년 11월호)에서 이 문제를 다룬 하시모토 겐지(橋本健二) 와세다대 교수(사회학)는 이를 흔들리지 않는 ‘암반(巖盤) 지지층’이라고 했다. 이는 아베 정권의 계승자로, ‘아베 없는 아베 정권’이라는 말을 듣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 약식 총재선거를 통해 스가 당시 관방장관에게 총재·총리 자리를 자민당 내 파벌 담합을 통해 물려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암반 지지층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베 장기집권의 토대 내지 근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향후 스가 정권의 향배를 점치는 데에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데에도 유익한 참고가 될 수 있다.

아베 정권은 2015년 여름에 ‘안보법제’(현행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각의 결정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을 바꾼 법안을 강행 통과시킨 것)를 제정 강행하고, 2017년의 모리토모·가케 학원 비리가 불거졌을 때, 그리고 ‘사쿠라를 보는 모임’ 비리를 포함한 여러 부정의혹을 다루기 위한 야당의 국회 개원 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집권 말기의 지지율 하락 때조차 30%대를 유지하면서 부(不)지지율을 크게 밑돈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암반 지지층의 실체는 무엇이었나?

자민당 ‘1955년 체제’의 골격

하시모토 교수의 <세카이> 기고문 ‘누가 아베정권을 떠받쳐 왔나-신자유주의 우익의 정체’에 따르면, 예전에 일본 자민당에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암반 지지층이 있었다. 그들은 상공업, 농업에 종사하면서 업계 단체나 정치인 후원회에 가입한 영세 자본가층, 그리고 농민·자영업자들로 구성된 ‘구(舊)중간계급’, 그리고 다수의 대기업 경영자들이다. 계급·계급론을 천착해 온 하시모토 교수에 따르면 예전에 일본인들의 정당지지를 결정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권자들이 소속된 계급이었다.

그가 말하는 계급은 “경제구조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구별되는 사람들 군집”인데, 카를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자본가계급과 이에 대립하는 노동자계급의 양극을 기본계급으로 본다. 사회학자들은 여기에 중간계급을 추가하는데, 앞서 얘기한 구(舊)중간계급에 전문직이나 관리사무직 종사자 등을 신(新)중간계급으로 넣어 계급을 4계급으로 분류한다. 이를 일본의 경우에 적용하면, 예컨대 1965년에 자본가계급의 66.7%, 구중간계급의 58.0%가 자민당을 지지했고, 신중간계급의 41.4%, 노동자계급의 47.8%가 혁신정당(당시의 사회당·공산당)을 지지했다.

이런 ‘계급정치’ 시대가 작동한 1965년부터 1985년까지 자민당에 대한 전국 지지율은 50%대 후반에서 60%대를 유지했다. 따라서 사회당 등 혁신계 지지율은 대체로 30%대를 넘어설 수 없었다. 그래서 혁신계(진보세력)가 집권하는 것은 영구히 불가능하지만 자민당의 ‘평화헌법’ 개정은 저지할 수 있는, 그리하여 미국이 일본 패전 뒤 짜 놓은 보수주도의 일본정치 구조(보수합동의 ‘1955년 체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런 수치는 수십 명의 일본 사회학자들 그룹이 자민당이 결성된 1955년부터 10년마다 실시해 온 ‘사회계층과 이동의 전국조사’(SSM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당지지 이유, ‘계급’에서 ‘격차’로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후, 말하자면 고도경제성장이 끝나고 거품경제를 거치면서 먼저 신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의 혁신정당 지지율이 내려가고, 뒤이어 구(舊) 중간 계급의 자민당 지지율도 내려갔다. 그리고 ‘무당파’(지지할 정당이 없다)가 늘어났다. 2005~2015년의 SSM 조사 데이터를 토대로 정당지지 구조의 변화를 분석한 사회학자 요네다 유키히로(米田幸弘) 와코대(和光大) 교수에 따르면, 그 10년간 자민당 지지율은 직업이나 계급보다는 ‘격차(빈부 양극화)’를 바라보는 정치적 태도, 또는 정치의식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변화를 하시모토 교수는 이렇게 요약한다. “사람들의 경제적 이해는 소속된 계급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예전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켜주는 정당을 지지했으므로, 소속 계급과 지지 정당의 대응관계가 명확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적 이해가 지지정당 결정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사람은 자민당을 지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야당을 지지하거나 무당파가 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소속 계급이 지지 정당을 결정하기보다는 격차에 대한 태도가 지지 정당을 결정한다. 이런 변화는 ‘계급정치’에서 ‘격차정치’로, 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일본의 정치적 대립을 ‘신자유주의 지지와 반대’라는 단순구도로 집약해서 판별하긴 어렵다고 보는 하시모토 교수는 여기에다 군대보유와 전쟁을 포기한 헌법 제9조로 대표되는 ‘평화헌법’ 지지 여부, 개헌 지지 여부, 일제의 전쟁책임 및 이 문제와 관련한 한국·중국에 대한 태도,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대한 태도까지를 넣은 다차원적 ‘정치의식’ 조사를 통해 이를 규명하려 한다.
여기에 합당한 조사가 2016년 7월부터 10월까지 실시된 일본 수도권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였다. 하시모토 교수는 응답자를 다수의 질문에 대한 회답을 종합해 크게 3가지 경향의 그룹(클러스터)으로 나눈 다음, 각 클러스터별로 응답자 비율, 8개 항목의 정치의식 조사 결과, 각 정당 및 아베 정권 지지율과 야당 지지율, 응답자의 기본속성과 계급귀속의식을 분류해 정리하고 도표로도 요약했다.


자민당의 열쇠, 신자유주의 우익

3개 클러스터 중 ‘신자유주의 우익’으로 분류된 클러스터 1의 응답자 비율은 전체의 10.02%이지만 매우 개성이 강하고 영향력도 크다. 이들이 바로 아베 및 자민당 장기집권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룹이다. 클러스터 1 응답자들은 정치의식을 묻는 질문 중 가난에 대한 개개인의 자기책임론을 지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 64.5%가 가난은 당사자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정부는 부자한테서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혜택 받지 못한 사람의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는 항목에 대한 지지율은 낮았고, “이유야 어쨌든 생활이 곤란한 사람이 있다면 나라가 보살펴야 한다”는 데에 찬성한 사람은 겨우 20.1%로, 이는 같은 항목에 대한 클러스터 2(‘온건보수’)와 클러스터 3(‘리버럴[진보]’)보다 현저히 낮았다.

또 클러스터 1의 66.3%가 “중국인·한국인은 일본을 너무 나쁘게 얘기한다”는 항목에 그렇다고 대답해 배외주의적 경향을 드러냈으며(클러스터 2, 3은 각각 30%대), 헌법 개정으로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데 대해 75.1%가 찬성했다. 주일 미군기지가 집중 배치된 오키나와가 지고 있는 기지부담이 너무 크지만 어쩔 수 없다며 수용한 사람이 85.2%나 됐다. 이들 두 항목에 대한 클러스터 3의 찬성비율이 1%대인 것과 크게 대조된다. 경제에 대한 정부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는 데에 클러스터 1 응답자의 46.3%가 찬성했다. “전쟁은 인간 본능에 따른 것이어서 없앨 수 없을 것이다”는 항목에 ‘그렇다’고 본 사람이 46.7%로 우파적 니힐리즘 경향까지 보였다.

중간파의 전형, 리버럴

이 ‘신자유주의 우익’ 클러스터와 대조적인 것이 클러스터 3(리버럴)으로, 응답자는 전체의 50.9%로 가장 많았다. 클러스터 3은 빈곤이 각자의 책임이라는 데에 34.9%만 찬성했으며, 정부가 부자한테서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빈곤층을 보살펴야 한다는 소득재분배를 지지한 사람이 72.5%로 높았다, 군대 보유 찬성자는 1.0%, 오키나와가 미군기지 부담이 크지만 어쩔 수 없다는 데에 수긍한 사람도 1.4%로 극히 낮았다. 정부의 경제·시장 규제가 적을수록 좋다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좋다고 대답한 이는 27.1%에 그쳤고, 전쟁은 인간 본능 때문이니 없앨 수 없다고 대답한 이도 16.7%로 매우 낮았다.

클러스터 2(온건보수)의 경우 중간파적 면모를 강하게 보였다. 전쟁은 인간 본능에 따른 것으로 없앨 수 없다고 한 이는 42.7%로 클러스터 1보다는 3쪽에 가까웠으나, 정부가 부자한테서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빈곤층을 돌봐야 한다는 소득재분배를 지지한 사람은 54.6%로 클러스터 1쪽에 가까웠다. 중국인·한국인이 일본을 너무 나쁘게 얘기한다고 보는 사람은 37.4%로 클러스터 3과 큰 차가 없었다. 개헌과 군대 보유에 찬성한 사람은 16.3%,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부담은 과중하나 어쩔 수 없다는 사람도 21.6%로 많지는 않았으나 이 두 항목에 대해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58.1%, 63.7%여서 중간파의 전형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경제에 대한 정부 규제는 가능한 한 작은 쪽이 좋다는 데에 찬성한 이는 29.2%로 클러스터 3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쪽이 강했다.


장기집권 메커니즘: 우익 결속, 무당파 분산

정당 및 아베 지지율을 보면, 신자유주의 우익(클러스터 1)의 자민당 지지율은 63.2%인데 비해 다른 정당 지지율은 3.7%에 지나지 않았다. 자민당 쏠림 경향이 매우 강하다. 아베 전 총리에 호의적인 사람도 68.7%다.
온건보수(클러스터 2)의 자민당 지지율은 32.4%로 이 역시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다른 정당 지지율은 아주 낮은 10.6%여서 전체적으로 자민당 지지색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러버럴(클러스터 3)의 자민당 지지율은 15.2%로 낮지만, 다른 정당 지지율도 14.9%로 더 낮다. 그런데 리버럴의 무당파(지지정당 없다) 비율이 무려 69.9%나 된다. 온건보수의 자민당 지지율(32.4%)과 아베 지지율(39.6%) 역시 중간파적 면모를 보이지만 무당파 비율이 56.9%나 된다. 리버럴과 온건보수의 이런 높은 무당파 비율은 무당파가 거의 없는 신자유주의 우익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결국 신자유주의 우익은 자민당·아베 지지로 결속하는데 비해 온건보수와 리버럴 쪽엔 따로 지지할 정당이 없는 꼴이다.

게다가 자민당 지지자 내역을 보면, 전체의 10.2%였던 신자유주의 우익 응답자들이 자민당 내 전체 지지자의 25.2%를 차지해, 투표율이 50% 전후로 낮아진 지금의  정치상황에서 결속력과 집중도가 매우 높은 신자유주의 우익세력이 수적으로 소수지만 판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력과 장악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이 바로 자민당의 암반 지지층이다.
반면에 리버럴의 표는 대부분 무당파로 정처 없이 흩어져 버린다. 온건보수도 수적으로는 자민당 내 다수 지지파가 돼야 맞지만 무당파로 흩어지고 신자유주의 우익의 결속력에 눌려 당내 주류가 되기 어렵다.

‘금수저’를 문 신자유주의 우익

하시모토 교수는 바로 이것이 아베 장기 집권의 메커니즘이라며, 신자유주의 우익의 정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먼저 남성비율이 77.5%로 대단히 높다. 리버럴의 과반수가 여성인 것과 대조적이다. 대졸자 비율은 73.4%나 돼 다른 두 클러스터(각각 50.6%, 43.9%)보다 훨씬 높다. 평균 세대 연 수입은 840만엔으로 온건보수보다 50만엔, 리버럴보다는 100만엔 가까이 더 많다. 총자산은 4921만 엔으로 이것 역시 다른 두 클러스터보다 훨씬 많다. 나이는 다른 두 클러스터와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에 계층적으로 상위에 있는 사람이 많은 셈이다. 소속계급을 보면 신중간계급이 47.1%로 반수 정도를 점한다. 자본가계급도 8.6%로 다른 두 클러스터보다는 높지만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우익의 과반수가 자신을 ‘남들보다 위’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돈 많고 학벌·가문 좋은 ‘금수저’들이다.

일본인의 정치의식 구도가 이런 것이라면 지금의 일본 정당체제는 전혀 이런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시모토 교수는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이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한켠에 다수파의 지지를 받는 리버럴 정당이 있고, 다른 한켠에는 이와 길항하는 정도의 지지를 받는 온건보수 정당이 있어야 하며, 이들과는 별개로 신자유주의 우익의 지지를 받는 소수파 전당이 따로 존재하거나 온건보수 정당 내의 우익 파벌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소수 신자유주의 우익이 다수파 지위를 차지하고 유권자 다수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길을 차단하고 있다. 이는 아베 정권 때나 지금의 스가 정권에서나 다를 게 없다.

한일의 정치파행을 바로잡으려면

이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시모토 교수는 리버럴을 대표하는 정당을 재건하고, 신자유주의 우익과 온건보수 사이에 쐐기를 박아 분리시킨 뒤, 온건보수가 지지기반임을 자각하는 정치가들과, 러버럴이 지지기반임을 자각하는 정치가들이 서로 손을 잡는 게(제휴 또는 연대) 해법이 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한다.

일본과는 정치상황이 좀 다르지만, 한국 정치도 (온건)보수와 우익의 결합 내지 제휴가 정치적 파행 내지 정체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이 또한 일본 패전 뒤 미국의 영향 아래 이 땅에 전개돼 온 리버럴(진보) 집권 배제라는 정치구도 전략과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일본과 다른 점은 한국에선 많은 희생을 치른 대중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그런 구도의 뿌리들을 일부 끊어냈다는 점이 아닐까. 어쨌거나 한국에서의 해법으로도 하시모토 교수의 처방이 유효하지 않을까.


학술회의 논란도 신자유주의 우경화의 연장

지금 일본에서 스가 정권이 학술회의 추천의 새 회원 후보 105명 중에 6명을 제외시켜 버린 뒤 왜 그랬는지 설명도 하지 못한 채 합법을 앞세우며 얼버무리고 있는 ‘사상통제 사건’이 큰 논란거리로 등장했는데, 이 또한 정권안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신자유주의 우익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뒤틀린 일본정치 현실의 반영일 수 있다.

6명은 모두 인문·사회과학 분야 학자들로, 아시나 사다미치(芦名定道) 교토대 교수(종교학), 우노 시게키(宇野重規) 도쿄대 교수(정치사상사), 오카다 마사노리(岡田正則) 와세다대 교수(행정법학), 오자와 류이치(小沢隆一) 도쿄지케이카이(慈恵会)의과대 교수(헌법학), 가토 요코(加藤陽子) 도쿄대 교수(일본근대사), 마스미야 다카아키(松宮孝明) 리쓰메이칸대 교수(형사법학)다.

아시나, 우노, 오자와 교수는 아베 정권의 안보법제를 비판한 ‘안전보장 관련법에 반대하는 학자 모임’을 만들거나 찬동한 사람들이고, 오카다 교수는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 해병대기지 이설 문제와 관련해 나고시 헤노코로의 이전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이전을 강행하는 당국의 법적 절차를 비판했다. 가토와 마쓰미야 교수는 공문서 관리 부실 문제와 예전 치안유지법의 범죄공모 예비검속을 방불케하는 ‘공모죄’ 제정을 비판했다. 스가 정권은 아직도 이들을 배제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법에 따라 처리했다는 주장만 늘어놓고 있으나, 이들의 언행이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우익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본 학술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 뒤 과학이 그 전쟁에 협력한 것을 반성한 토대 위에 설립된 기관으로, 총리가 회원 임명을 관장하고 단체 경비는 국비로 부담하지만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특별한 기관”으로, 210명의 회원과 약 2000명의 제휴(연대) 회원으로 구성한다. 인문·사회과학, 생명과학, 이공 분야의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국회’로도 불린다. 6년 임기로 3년마다 절반을 교체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6명은 교체될 절반인 105명 추천후보 중에서 배제당한 이들이다. 학술회의가 추천한 사람들 중에서 총리가 가려 뽑아 발표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형식일 뿐 실질적으로는 추천된 사람들을 그대로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지난 9월까지 학술회의 회원이었던 사토 이와오(佐藤岩夫) 도쿄대 교수(법학)는 이런 말을 했다. “학술회의의 추천에 따라 임명한다는 규정에서 학술의 의의와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입법자들의 높은 식견을 엿볼 수 있다. 아베 정권 이후 정부는 임명권을 방패로 삼아 인사개입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학술과 정치의 관계가 크게 바뀔 위험성이 있다.”(아사히신문 10월 3일자)
그런데 인사권이야말로 스가 총리에게 전가의 보도라는 지적들은 그의 관방장관 시절부터 있어 왔다.

한승동/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