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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into 아시아’] 태국의 민주화시위는 ‘촛불 혁명’이 될 수 있을까?

by | 2020년 10월 21일 | 국제, 정호재의 'into 아시아'


태국의 민주화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군부 출신인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과 왕실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는 석 달째 계속되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2014년 5월 육군참모총장 시절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뒤 지난해 총선에서 재집권했다. 특히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제3당 퓨처포워드당(FFP)을 강제해산하고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해왔다.
태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푸미폰 국왕이 4년 전 서거한 뒤 새로운 국왕에 대한 실망과 좌절도 한몫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태국 왕실의 재산은 약 300억 달러(약 33조40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코로나19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왕실 예산은 16%나 증액됐다. 또한 태국은 상위 1% 부자들이 국부(國富)의 67%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왕실은 군부 정권과 기득권층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는 게 시위대의 주장이다.
시위대의 주역은 10~30대 젊은이들이다. 시위대는 최근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SNS 호소문을 통해 자신들의 시위를 ‘1987년 한국의 6월 민주항쟁’에 비유하고 있다.
정호재 필자는 이번 시위를 “코로나19 속 10월 혁명”이라고 말한다.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과 군부, 정치권의 무능·부패에 대한 반감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의 민주화세력은 과연 과거의 숱한 실패와 좌절을 딛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 모델’이 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편집자]

#바트貨 경제권, 아세안 창설 주도
  ‘동남아의 일본’에서 정치후진국으로
#97년 바트화 폭락, IMF 위기 촉발
  아직도 후유증 극복 못한 채 정체
#저임금 바탕으로 서비스산업 발전
  상속세율 5% 불과해 富·특권 계승
  탁신 정권 등장, 기득권체제 균열
#코로나19 이후 양극화 더욱 심화
  한국 촛불시위, 홍콩 시위도 한몫
  아시아 정치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지난해 가을, 필자는 미얀마 양곤에서 테니스 친구를 찾고 있었다. 무더운 남국(南國)에서 살아보신 분은 알겠지만, 저녁에 놀 거리가 거의 없고, 차가운 맥주도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알코올 기운이 체온을 높이는 탓이다. 덥다고 방구석에만 있으면 의욕을 잃기 쉬워 땀 흘리는 운동이 꼭 필요한데, 한국에선 서서히 인기가 사그라진 테니스가 최적의 선택이 되곤 한다. 대영제국의 유산이다.

필자의 ‘파트너 구함’이란 글에 답을 한 것은 50대 태국인 신사였다. 테니스 라켓을 안고 그의 거처를 찾고 보니, 양곤 시내에서 가장 좋은 테니스코트를 갖춘 럭셔리 맨션이었다. 금융인인 그는 이미 3년째 미얀마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양곤과 방콕은 비행기로 딱 1시간 거리다. 서울과 도쿄의 관계와 엇비슷하다. 교양 있는 태국 중상류층인 그에게 거친 미얀마 생활은 그리 탐탁지 않아 보였다.

“여기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잘 안되네요. 빨리 방콕에 돌아가고 싶어요.” -그-
“그래도 태국 기업들은 미얀마에서 크게 성공하지 않았나요? 태국이 중국에 이어 미얀마 투자 2-3위를 다투는 나라인데요.” -필자-
“그렇긴 한데, 여전히 인건비 장사가 많아서… 이웃인 미얀마가 너무 가난하면 우리 태국이 버거우니 미리미리 손을 쓰는 수준인거죠. 여기서 어떻게 큰돈을 벌겠어요.” -그-

#바트貨 경제권, 아세안 창설의 주역

태국과 미얀마의 관계는 1970~1980년대 일본과 한국의 그것과 엇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2400㎞에 달하는 기다란 육로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데, 실제로 국경 주위엔 수많은 임가공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태국 서북부 메솟(Mesot)이란 도시가 대표적이다. 매일 아침 수만 명의 미얀마 노동자가 태국으로 건너가 일하고 복귀하는 식이다. 아예 태국에서 머물며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숫자도 상당하다. 당연히 태국의 바트화는 미얀마에서 현금처럼 쓰일 정도. 이는 태국의 오른편에 위치한 라오스나 캄보디아 역시 마찬가지다.

이른바 바트화 경제권이다. 짧게는 1980년대 이후, 길게는 20세기 이후 태국은 대륙 쪽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최강국 지위를 유지해왔다. 베트남이라는 군사적 경쟁자가 있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양국의 GDP 차이가 10배에 이를 정도로 경제면에선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때문에 동남아에서 쓰는 거의 모든 소비재는 태국산이었으며, 방콕은 교육·의료·관광 등 서비스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아세안의 창설을 주도하고 실질적으로 이끈, 동남아의 실질적 맹주였던 셈이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1차적 이유는 서구의 식민지배를 피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참사를 덜 겪었기 때문이겠지만, 오히려 1960년대 본격화된 냉전체제의 수혜를 입었다는 평가가 더 적확하다. 태국 쭐라롱콘대학의 파숙 퐁파이칫 전(前) 교수(경제학과)는 “1960년대 본격화된 세계은행(월드뱅크)과 미국의 원조가 농업국가인 태국의 현대화를 이끈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1970년대 이후 일본의 본격적인 외국인투자가 더해졌다. 태국을 일본의 동남아 거점이자 하청기지로 만든 것이다. 덕분에 1961년 1인당 100달러 정도였던 GDP가 1991년 1750달러로 급성장하며 아세안의 맹주로 부상했다.

#냉전체제가 만든 ‘동남아의 일본’

태국의 자주권 수호와 남다른 경제성장 덕분에 이 나라 엘리트들이 갖는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군부쿠데타로 정권이 20여 차례 뒤바뀌는 와중에서도 나라가 그럭저럭 굴러갔던 이유는, 바로 왕정체제와 더불어 200년 넘게 쌓아올린 탄탄한 관료제 시스템이었다. 이는 자연스레 일본의 성공신화와 좋은 비교거리가 된다. 왕실의 존재, 관료 중심제, 냉전체제의 수혜, 주변의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은, 태국 정치권의 뚜렷한 금권정치(money politics) 흐름이다. 한국의 40대 이상은 지금도 청백리의 상징인 “짬렁(혹은 잠롱)” 전 방콕 시장의 이름을 기억한다. 불교식 ‘무소유’ 정신을 표방하며 태국정치의 한 상징으로 1990년대를 아로새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짬렁의 퍼포먼스가 국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이유는, 그만큼 태국정치가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국현대사가 냉전체제를 배경으로 급성장했기 때문에, 당연히 공산주의나 시민사회운동은 그 기간 중 국가폭력에 의해 철저히 탄압을 당했고, 그 결과 의회를 장악한 세력은 지방에 강고한 뿌리를 둔 토지 중심의 ‘귀족 정치인’들이었다. 1979년 이후 2001년 탁신 정권이 등장하기 전까지 원내 제 1당이 의회의 1/3을 넘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치가 파편화되고 오합지졸 정당들이 창궐했다. 그놈이 그놈인 탓이다. 이들은 강고한 지역 내 세력을 기반으로 마치 일본의 보수정치와 비슷하게 정치를 가업으로 계승시키며, 뚜렷한 ‘금권정치’의 모습을 보인다. 돈을 많이 써서 선거에 이기는 게 태국의 정치문화였다.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정치권은 썩어 들어갔고, 관료제와 냉전체제의 영향으로 군부의 똥별들만 빠르게 늘어나고 (현역 육군 장성 숫자만 2200명 이상, 한국은 300여 명), 그 결과 예전 하나회-알자회 장성들이 권력을 뺏고 빼앗는 방식의 군부쿠데타 속에서 아무런 변화의 모멘텀을 얻지 못하고,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리고 1997년 5월,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크게 출렁이게 된다.

#상속세 5%, 뚜렷한 계급사회

태국 관광을 다녀온 한국인들은 저렴한 태국식 마사지와 거리에 즐비한 노점상, 그리고 가성비 좋은 럭셔리 호텔들을 많이 기억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진즉에 7000달러를 넘어선 1인당 GDP를 무색케 할 정도의 턱없이 낮은 인건비가 주요 요인이다. 미얀마는 1인당 GDP 1500달러(약 180만원, 월 15만원) 수준의 최빈국인데, 태국의 노동자 수입도 대부분 월 40만원 안팎에 그친다. 이런 저임금 덕에 태국의 서비스 산업들은 막강한 경쟁력을 갖게 되지만, 노동자들은 언제나 가난에 허덕이게 된다.

태국의 도심 곳곳과 시장을 빼곡하게 채운 자영업의 상징인 식당 역시 마찬가지다. 뚜렷한 기술과 자본이 없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대개 그렇듯 대책 없이 식당을 열고,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는 무한경쟁, 개미지옥에 빠지고 만다. 아무리 태국요리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해도, 막상 태국을 여행해보면 숨 막힐 정도로 영세한 식당들의 물결에 말문이 막힐 정도다. 서민들은 밥집이라도 해서 먹고 살라는 나라님의 배려 덕분인 걸까?

반면 방콕의 고급빌딩과 저택 그리고 최신식 콘도는 서울이나 도쿄와 비견될 정도로 휘황찬란하고 값도 비싸다. 당장 방콕 시내의 대형 백화점에 가보면 매장 한가운데 롤스로이스 전시장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부자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이 대목에서 태국과 일본의 현대사가 뚜렷이 구분이 된다. 바로 부(富)의 승계, 상속세 얘기다.

태국은 현재 250년 가까이 짜끄리 왕조가 진행 중이다. 당연히 왕실이 있고 그보다 훨씬 많은 방계왕족이 있고, 이들을 호위하는 지방의 호족과 귀족이 켜켜이 쌓여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서구 침략을 운 좋게 피하다보니 엘리트 계층들이 굳이 자기개혁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외부 침략과 내전을 겪지 않고 보수정치인들이 금권정치로 권력을 계승한 덕에 일본의 메이지유신처럼 서구의 제도를 제대로 모방할 기회도 얻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상속세인데, 일본과 한국이 유럽에서 배워온 대로 보통은 30~50%의 상속세를 내는 데 반해, 태국은 놀랍게도 고액자산가들의 경우 5% 정도에 그친다. 이 정도의 세율이라면 귀족들이 국가에 겁낼 일이 없다. 문제는 이 상속세도 2016년에 국민들의 끈질긴 요구로 역사상 첫 도입됐다는 점이다. 그 이전엔 아예 상속세가 없었다. 현행 제도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대대손손 권력을 잃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러니까 과거 왕실로부터 불하된 토지와 사업권을 여전히 승계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각종 호텔과 위락시설, 시멘트·통신·유통회사를 세우고 그마저 대학 등의 준(準)공영 기업으로 만들어 국가 보조금까지 충실하게 챙겨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태국의 부자가 계속 부자인 이유고, 서민이 계속 가난한 이유다. 당연히 태국은 현대적인 민주국가라고 보기에 애매한 측면이 있다.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그리고 1차·2차 대전에서 비롯된 가장 기초적 제도(노동3권, 의료보험, 연금 등 사회복지)를 도입하지 못한 대목이 여럿이다.

#금융위기 이후 2001년 탁신 정권 등장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태국의 바트화 가치 폭락이라는 사실은 현대사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전 세계가 이른바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고 금융자본주의 시대로 이동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997년 5월, 태국의 바트화는 달러당 25바트에서 순식간에 54바트로 100% 넘게 추락을 하면서, 국내경제가 사실상 박살났다. 현재도 태국은 바로 당시 IMF 금융위기를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저임금도 1997년 이후 전혀 상승하지 못했다)

태국 바트화의 위기와 폭락에 대한 해석은 여럿 있지만, 필자는 앞서 강조한 ‘냉전체제’란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러니까 1960년대 이후 태국경제가 미국과 일본의 원조로 외견상 좋아진 것은 맞지만, 국가 차원의 혁신이 미흡해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일종의 사상누각(沙上樓閣) 식으로 바트화의 고평가가 장기간 이뤄진 것이다. 냉전이 진작 끝났음을 눈치 챈 금융권 하이에나들이 그 약점을 제대로 물고 늘어진 것이 바트화 가치 폭락을 확대했고, 아시아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됐다. (덕분에 한국도 가장 피해자이자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는데, 이는 동남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펀더멘탈(경제기초)을 갖췄기 때문이다)

당연히 태국의 군부나 귀족사회는 외환위기를 수습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이때 태국의 정치권이 주목한 인물이 바로 태국의 통신재벌 ‘탁신 친나왓(현재 71세)’이다. 2001년 집권해 2006년 군부쿠데타로 실각한 탁신 전 총리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우선 그는 경찰사관학교 출신의 국가공무원을 경험한 기업인으로, 1980~1990년대 통신사업으로 태국의 신흥재벌 대열에 합류했다. 군인은 아니지만 경찰대를 나온 통신재벌이라니…, 당연히 ‘특혜로 성장한 구시대 기업인’에 속한다.

그러니까 정통관료들과 군인, 토지귀족 입장에선 자신들이 태국을 운영하다가 경제가 박살이 났으니, 이 기회에 아예 화끈하게 돈을 벌어본 기업인에게 권력을 시험 삼아 맡겨본 것이다. 경제위기 처방전을 마련해 달라는 주문이었고, 당시 보수정치권에 남겨진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셈이다.

#귀족과 기득권층을 배신한 탁신

필자가 탁신의 생애와 사상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유무선 통신사업으로 성장한 그는 기존의 태국 정치인과는 상당히 다른 정치의식을 가졌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상 준조세에 가까운 휴대전화서비스는 국민소득의 증가에 따라 성패가 직결되는 사업이다. 일반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야 통신비 지출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탁신이 구상한 개혁의 핵심은 ‘국가경제의 양적인 성장’과 더불어 ‘서민들의 복지 증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상 처음으로 태국에 ‘분배’와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치인이 탄생한 것이다.

기업인답게 그의 문제해결 방식은 곡선이 아닌 직선이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태국경제의 모순은 내수경제가 극도로 취약한 것이었고, 이는 외환위기 극복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극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빈곤층이 존재하는 양극화사회에서 풍부한 내수경기란 게 존재할 리 없다. 그럴 경우 세금을 더 거둬 가장 가난한 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의료보험제도를 확충하고, 도시빈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최하층 농민부터 재정을 풀어 지원하는 식이다.
아주 상식적이자 현대적인 정책이 탁신에 의해 처음 집행되자, 지난 100여 년간 군부와 냉전의 총칼에 눌린 농민과 서민층이 열렬한 수준을 넘어 광적인 지지를 보내게 된다. 이른바 선거를 휩쓴 ‘탁신 현상’이었다.

2006년 탁신은 보수파의 쿠데타로 실각했지만,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친(親)탁신파 정당은 5번의 선거에서 모두 3분의 2 의석을 휩쓸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당연히 ‘탁신의 개혁’이라는 단맛을 본 서민들이 기존의 보수정당을 지지할 일이 사라진 것이다. 이에 보수정치권은 탁신을 ‘포퓰리즘’, ‘비리 정치인’으로 매도하며 입국금지 같은 강력한 탄압에 나섰고, 실제로 2014년 이후 선거 자체를 중단할 정도로 극도의 공안정치를 펼쳐왔다. 이것이 바로 왕권의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명분삼아, 군부 출신인 쁘랴윳 총리가 현재까지 집권하는 배경이 된다.

#2020년 10월, 20대들의 반란

태국현대사를 짧게 돌아보았지만, 아직 안한 얘기도 있다. 태국의 왕실 얘기다. 그런데 필자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한다. 현재 태국의 엘리트집단은 새로운 국왕(라마 10세)이 뭔가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해도 쉽게 바뀔 만큼 허술하지 않다. 앞서 설명한대로 지난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굳건하게 형성된 군부-귀족 연합정치 체제가 너무도 강고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왕실을 앞세우고 호가호위한 것일 뿐이지, 왕실개혁이 핵심의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2020년 10월 14일,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태국 젊은이들이 대대적으로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우리도 코로나19로 인해 락다운(lockdown)을 겪어봐서 알지만 태국 역시 지난 2월부터 강력한 방역정책을 실행해왔다. 필자는 지난 2월 말, 한국이 대구신천지 사태로 신음할 당시 방콕 중심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방콕 거리엔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어서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무더운 방콕에서 마스크를 쓰는 건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안 쓸 재간이 없었다. 역병에 걸리면 나라님이 절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턱없이 비싼 치료비부터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함께 떠돌았다.

그로 인해 식당 영업은커녕 물건 판매도 지지부진했다. 이런 경우에 가장 먼저 죽어나는 사람들이 누가 될 것인가? 바로 식당 주인, 판매사원, 자영업자 그리고 10대·20대 젊은이들이다. 태국의 사회안전망 대책은 한때 ‘동남아의 일본’이라는 표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허술하다. 부자가 아니라면 대개 근근이 먹고사는 정도다. 그런데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가까이 제대로 생계유지를 못했다고 생각해보시라. 바야흐로 혁명적인 상황이자,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이미 태국 사회는 2009년을 정점으로 레드셔츠(親탁신파), 옐로셔츠(反탁신파)의 두 진영으로 쪼개져 공화정을 둘러싸고 거친 격돌을 거듭해온 사회다. 당연히 귀족정 말고 공화정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훨씬 크고 높다. 선거를 통해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을 뽑겠다는 욕망으로 충만한 것이다. 게다가 2016년 한국의 촛불시위, 2019년 홍콩 민주화시위를 인터넷과 TV로 빠짐없이 목격한 세대가 많아졌다. 젊을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양극화 경제를 좋아할 서민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지난주에는 필자의 지인인 방콕 어느 대학의 30대 교수가 페이스북 메시지로 필자에게 이렇게 귀띔했다.

“적어도 한국인들은 태국 젊은이들의 처지와 목소리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어.”

당연하다. 우리가 어찌 태국인의 사정을 이해 못하겠는가. 너무도 잘 이해한다. 코로나19 시대라는 아픔 속에서도 아시아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호재 필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짧지 않게 기자생활을 했다.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를 두루 답사하며 태국의 탁신, 말레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번역서로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올해에는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펴냈다. 싱가포르와 미얀마 등을 오가며 연구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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