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華爲)는 지난 15일부터 미국 상무부의 사전 허가 없이, 미국 기술을 부분적으로라도 활용한 반도체를 공급받을 수 없다. 화웨이는 1987년 창사 이래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는 기술패권의 도전자인 중국이 더 커지기 전에 수족을 잘라 내려는 미국의 초당적이고 거국적인 의지가 깔려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중국 반도체 업계가 10 nm (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의 초미세 스케일의 패터닝(patterning) 기술 단계로 진입하지 못하게 저지하려는 미국의 주도면밀한 브레이크가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제1위 파운드리 업체인 SMIC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SMIC는 16일 미국의 제재조치가 발효된 뒤 ‘화웨이 제재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의 꿈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피렌체의 식탁>은 미중 반도체 전쟁의 내막과 전망, 한국의 대응방향을 살피기 위해 권석준 박사의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는 권 박사는 두 번째 칼럼에서 중국이 선택할 옵션을 세 가지로 압축한다. ①버티기 게임 ②갈라파고스化 ③백기투항이다. 전문가의 냉정한 시각으론 중국의 기술패권이 아직 요원하다는 얘기다. [편집자]

※참고
[권석준의 ‘반도체 전쟁’①] 중국이 20년 가꿔 온 꿈, 10년 안에 무너질 수 있다
https://firenzedt.com/?p=10059

#반도체 시장, 철저한 분업 구조
  초미세 패터닝, 고품질 EUV 등
  핵심 인프라 모두 끊기며 고립
#세계 1위인 TMSC(대만)도 손 떼
  中업체 SMIC, 선두권과 3년 격차
#'기술 자립' 기치 아래 항전 태세
  내수시장 위주로 버티기 게임 
#아예 新개념 규격, 로드맵 채택
  갈라파고스化의 길 선택할 수도
#美 압력에 굴복해 백기투항 땐 
  향후 50년간 머리 숙여야 할 판

미국이 핵심 타겟으로 겨냥한 화웨이는 어떤 기업일까? 화웨이는 통신장비 시장에서, 스마트폰 점유율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올 상반기 매출액 77조6000억원 가운데 90% 정도가 두 분야에서 나왔다. 특히 5G 통신장비의 시장점유율은 35%에 이른다. IT 하드웨어 분야에서 명실상부하게 중국을 대표하는 간판 기업이다. 거의 모든 제품에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이 회사의 정확한 명칭은 ‘화위기술유한공사 (華爲技術有限公司)’다. 1987년에 군(軍) 통신부대 장교 출신인 런정페이(任正非, 1944년생)가 창업했는데, 이 회사는 형식상 사기업(公司)이지만 실제로는 공기업(公社)으로 분류된다. 화웨이의 회사이름에는 ‘중화(華)민족을 위(爲)하여’는 뜻이 들어가 있다.

화웨이는 지난 40여 년간 중국 경제와 함께 급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지원과 비호 아래 군(軍) 기관과 31개 성(省)·시(市) 지방정부의 굵직굵직한 관급 프로젝트를 독점 수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의 직간접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공산당과 정부·기업이 결합된 당·정·기(黨政企) 연합체제인 셈이다.

화웨이는 ‘종합 IT기업’이라 일컬어지나, 핵심 분야는 역시 통신사업, 그 중에서도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 제조 및 서비스다. 몇년 전부터는 인공지능(AI)과 무인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분야에도 도전해왔다. 화웨이는 2000년대 초반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통신시장을 독점했지만, 내수 시장이 포화에 다다르자 매출-수익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이후 국제 사회에서 공격적인 기술 탈취행위를 펼쳐 각국에서 경계와 비난의 대상이 됐다.

화웨이의 첫 번째 희생양은 캐나다였다. 통신장비업체인 노텔(Nortel)은 한때 캐나다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임직원 숫자만 10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2000년부터 10여 년간 중국에 의해 지속적으로 전개된 해킹 때문에 자사의 통신장비 설계도와 첨단기술 관련 비밀이 유출됐다. 그렇지 않아도 4G 이동통신 기술의 주도권 상실로 사세가 기울어가던 노텔은 결국 2013년, 다국적기업 연합세력에게 보유 특허가 모두 팔리면서 공중 분해되고 말았다.

노텔뿐만 아니라 미국의 통신장비 업체인 시스코(Cisco) 같은 대기업 역시 원격 접속 방식으로 회사 내부의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중국발(發) 해킹으로 인해 자사의 통신장비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가 대량으로 털렸음을 공개하기도 했다. 유럽 각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화웨이가 수출한 통신장비에 심어진 백도어(※사용자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주기적으로 제조사의 중앙 서버로 전송하는 보안 불안 요소)로부터 각종 정보가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그것들이 중국으로 송신되고 있다는데 주기적으로 우려와 분노를 천명했을 정도였다.

첨단기업 해킹 통해 반값 경쟁력 확보

세계 시장의 후발 주자였던 화웨이가 각국의 시장 장벽을 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기본적으로는 중국 정부의 밀어주기 정책에 힘입어 회사 덩치를 키우면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경쟁 업체의 기술을 빼내거나 해킹을 통해 모자랐던 기술력을 확보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그 덕에 기술개발 비용은 물론 기술 노하우를 활용한 원가가 절감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화웨이는 해외 특허에 대한 로열티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모방과 복제를 반복해 타사 제품과 비교할 때 거의 반값 수준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해외 거래 업체들로선 비슷한 성능이라면 화웨이 제품을 쓰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화웨이의 시장 점유율은 계속 올라갈 수 있었다. 특히 통신장비 분야에선 단일 품목의 장비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엮인 수직 계열화된 통신장비들을 세트(set)로 구매해야 돼 유럽은 물론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하이테크 기업들의 통신장비까지 점차 장악해 나가면서부터다. 단순한 해킹 정도로 치부했던 화웨이의 기술 탈취 행위가 점점 더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이런 시도는 마침내 국가 안보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군산(軍産) 복합기업에까지 그 마수가 뻗쳐, 각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기업이 시도했어도 문제가 됐을 건데, 알고 보니 중국공산당 정부가 배후에 있다는 의혹으로 확대된 것이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출범하기 한참 전부터 중국 IT기업들의 해킹 행위, 특히 미국의 통신, 반도체, IT 서비스 기업 등에 대한 다양한 해킹 시도를 정보기관들이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물론 그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와 IT기업들은 2010년 이후 경고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보냈지만,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런 기조는 2016년 트럼프 정권이 출범한 뒤 크게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다지고 내부의 반감을 외부로 돌릴 일석이조의 적절한 호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마침내 2019년 5월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조치로 화웨이와 미국 국적 기업 사이의 거래는 사실상 중단됐다.

1년 후, 2020년 5월, 이번에는 더욱 강력한 조치가 발효되었다. 아예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계 IT 테크기업들이 미국 기술이 하나라도 들어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를 구매할 수 없도록 제재조치를 내린 것이다. 심지어 지난 15일부터는 미국 국적 기업이 아니더라도, 미국 특허로 등록된 기술을 사용하는 제3국의 기업들이 사전 허가 없이 화웨이와 거래할 경우, 미국은 해당 기업에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가하겠다는 조치를 내렸다.

TSMC, 큰불은 피하고 보자는 전략?

미국 정부가 지난 15일 내린 조치는 사실상 대만의 TSMC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1위의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인 TSMC는 10 nm 이하의 최신 초극미세 패터닝 공정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로 가장 많은 웨이퍼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Patterning은 반도체 회로에 미세한 크기의 전자 회로를 새기는 공정)  심지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한국의 삼성전자도 10 nm 이하 패터닝 공정에서라면 수율(Yield)과 양산 능력에서 밀릴 정도다.

그렇다면 TSMC는 화웨이와 어떤 관계일까? 화웨이의 자회사이자 CPU 설계를 하는 중국의 하이실리콘(Hisilicon)은 팹리스 (fabless) 회사다. 즉, CPU, AP, GPU 같은 비(非)메모리 반도체 칩의 ‘설계’까지는 하지만, 직접 그 칩을 생산할 능력이 없다. 설계는 가능한데 생산 또는 테스트 능력이 없는 회사들을 위해 반도체 칩을 만들어주는 회사들이 바로 TSMC 같은 파운드리 회사들이다. 크게 보면 같은 중화권으로 묶이는 화웨이와 그 자회사, 즉 하이실리콘과 TSMC의 공생 관계는 꽤 오래 지속돼왔다.

TSMC는 2019년 전체 매출의 15%를 화웨이에서 올리고 있을 만큼 둘 사이의 공생 관계는 돈독하다. 특히 2010년 이후, 화웨이가 통신장비 사업을 넘어서 다양한 IT 비즈니스로 공격적인 행보를 전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TSMC의 전폭적인 반도체 칩 공급과 맞춤형 파운드리 공정이 뒷받침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가 대중국 기술제재 조치를 내리자 TSMC는 즉각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칩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 선언했다. 심지어 120억 달러 규모의 5 nm 공정 팹을 아예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건설하고, 미국의 파운드리 회사들과 전략적 기술 제휴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의 입맛에 맞춰 일단 큰불을 피하고 보자는 대응이었다.

TSMC 의존도가 높았던 화웨이로서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화웨이는 2~4위 그룹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그리고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Global Foundry) 같은 업체를 차선책으로 수소문했다. 물론 이들 기업이라고 세컨더리 보이콧 정책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결국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 조치가 지속되는 한, 외국 업체와의 제휴가 불가능해졌고, 자국 내에서 어떻게든 반도체를 공급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즉 자국의 자원·기술만으로 최신 세대의 반도체 칩을 양산해내야 할 긴급상황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 설계기술, 1~2세대 넘게 뒤져

이제 시선을 돌려 과연 중국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CPU 그리고 반도체 공정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 살펴보겠다.
대만의 VIA라는 CPU 회사는 2013년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상하이 시와 합작 회사를 세우는 대신, 자사의 기술 라이센스를 중국 업체인 자오신(Zhaoxin)에게 넘기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물로 최근 자오신이 내놓은 CPU가 KaiXian KX-6000 모델이다. 팹은 TSMC의 16 nm 공정에 위탁 생산하였다. 이 칩의 최고 클럭은 3.0 GHz이며, 8 코어로 스펙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성능은 인텔(Intel)의 평범한 내장 그래픽 칩만도 못하다. 인텔의 중저가 CPU Core i5-7400급에서 1920´1080 해상도로 90 fps의 속도를 보일 때, Zhaoxin 칩은 15~20 fps 정도밖에는 내지 못한다. 동일 클럭 수에서는 두세 세대 이전 AMD CPU인 브리스톨 릿지 급과 유사한 성능을 보인다. 동일 세대인 인텔의 x86 칩과 비교해 봐도, Zhaoxin 칩은 미국의 CPU와 대비할 때 대략 3분의 1 이하의 성능이다.

반면 단위 작업 당 소모되는 전력은 훨씬 높아서, 동일 세대의 CPU 대비, 대략 2~3배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가성비를 따지면 현 세대 CPU의 대략 9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애초에 가성비가 동일 세대 대비 10% 정도 밖에 안 나오는 칩이라면, 그것은 팹 공정과는 상관없이, 반도체 칩의 설계기술 수준이 선두 업체에 대비할 때 적어도 1~2세대 이상 뒤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의 기술발전 속도는 무섭다. CPU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이 과점하고 있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역시 무서운 기세로 따라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낸드(NAND) 플래시메모리 양산 업체인 YMTC(양쯔메모리, 국유기업) 등에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해 삼성전자의 D램(DRAM) 사업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특히 최신 D램 메모리의 용량 확보에 필수불가결한 기술이 된 3D 적층 구조 구현에서도, YMTC는 2019년 64단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이어, 2020년 90단, 2021년까지 128단, 3차원 적층 구조 기반의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셀 하나에 4비트의 데이터를 저장해 처리하는 128단 3D QLC 낸드플래시 성능 테스트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CPU 설계 업체인 하이실리콘은 화웨이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급성장한데 힘입어, 자사의 AP칩 ‘기린’을 활용해 중국 내수시장을 장악했다. 2020년 1분기만 해도, 하이실리콘은 중국 스마트폰 용 AP 시장에서 44%에 달하는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중국이 반도체 ‘기술 자립’을 외칠 수 있는 배경이다.

CPU 설계 역량도 과대포장 느낌 

화웨이가 손을 뻗치고 있는 사업은 또한 서버용 반도체 분야다. 서버는 애초에 대용량 데이터의 안정적 처리가 관건이어서 CPU가 많이 필요하다. 이 역시 하이실리콘이 독점 공급하였는데, 하이실리콘은 ‘쿤펑’이라는 브랜드 명을 가진 서버용 CPU를 공급했다. 특히 5G 무선통신 분야에서도 하이실리콘은 ‘바룽’이라는 칩셋을 화웨이에 공급하고 있다. 화웨이가 AI, IoT, 드론, 자율주행차 같은 차세대 IT 영역까지 비즈니스 영역을 넓혀가려면, 어쨌든 각 기기에서 대용량의 정보를 처리할 반도체 칩이 필요한데, 아마도 설계는 하이실리콘에게 맡길 것이다.

2020년 7월, 중국에서는 아예 OS와 CPU를 모두 자급자족한, 즉 순수 중국산 PC인 ‘톈위에 (Tian Yue)’를 처음 선보였다. 이 역시 중국 정부의 주도 아래 하이실리콘을 필두로 한 중국의 여러 CPU 설계 회사들이 함께 만든 OS 합작품이다.
자국산 OS인 기린(Kyrin) 혹은 하모니(Harmony)가 탑재된 이 PC는 중국항공과학산업그룹 (CASIC)에 의해 개발되었고, 중국 랴오닝성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다. CPU는 중국의 파이티움 (飛腾, Phytium), 룽손 (龙芯, Loongson), 쿤펑 (鯤鵬, Kunpeng), 하이라이트 (Highlight), 자오신 (兆芯, Zhaoxin), 선웨이 (神威, Sunway) 등 6개의 중국산 CPU를 장착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각기 달라 보여도 당연히 배후에는 하이실리콘, 그리고 화웨이가 존재한다. 중국 정부는 어떻게든 반도체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자세다. 룽손의 CPU는 3A4000과 3B4000의 4코어 2.0 GHz, 28 nm, 파이티움의 CPU는 FT-2000의 4코어 2.6~3.0 GHz, 16 nm이 있으며, 쿤펑의 ARMv8 기반 920 CPU는 7 nm 공정에 최적화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선웨이의 Sunway1621는 4코어 2 GHz, 28 nm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티움 역시 슈퍼컴퓨터 전문 CPU 업체로서 한국에는 ‘톈허(Tianhe, 天河)’라는 리눅스 기반 슈퍼컴퓨터로 잘 알려져 있다. 역시 두세 세대 이상 차이 나는 아키텍처로 극한까지 성능을 끌어 올려 ARM 계열 CPU를 설계하고 있다.

문제는 하이실리콘 자체의 CPU 설계 역량 중 상당 부분이 알고 보면 과대 포장돼 있다는 것이다. CPU 설계는 이미 많은 부분이 기존의 반도체 설계 및 생산 기업에 맞게 최적화되어 있고, 그중 일부는 전자 설계 자동화 SW인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 반도체 전자설계 자동화 툴)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애초에 팹리스 회사들이 EDA를 피해서 CPU를 설계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업계의 생태계는 철저하게 분업화돼 왔다.

그런데 EDA의 주요 회사들은 모두 미국에 본사가 있다. EDA 시장은 시놉시스 (Synopsys), 케이던스 (Cadence Design Systems), 멘토-지멘스 비즈니스 (Mentor, a Siemens Business)가 전 세계 EDA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의 제재 조치에 따라 이들 기업의 EDA를 중국 반도체 설계 업체에서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 CPU 회사들은 최적화된 EDA 없이 반도체 칩을 설계해야 할 처지다.

중국 SMIC, 선두권과 기술 격차 3년

화웨이를 필두로 한 중국의 IT 기업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에 꾸준히 대비해 왔다.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가 이에 대해 몇 차례 의견을 표명한 적도 있다. 중국은 반도체 기술 굴기를 기치로 내걸며 2020년 상반기에만 1400억 위안(약 22조원)이 넘는 투자를 했고, 앞으로도 엄청나게 풍부한 자금력으로 반도체 기술 자립을 추진해나갈 태세다.

문제는 화웨이가 TSMC는 물론 대량의 위탁 물량을 소화해 줄만한 파운드리 회사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중국에는 SMIC (중국 명: 中芯國際)라는 5위권 파운드리 업체가 있다. 하지만 이 업체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현재 5%도 안 된다.

또한 SMIC와 TSMC의 기술 격차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3년이다. SMIC의 파운드리 공정 수준은 2020년 상반기 기준, 14 nm가 한계인데, 이미 이 공정은 TSMC가 2017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것이다. TMSC와 삼성은 현재 7 nm 팹, 앞으로는 5 nm 팹, 그리고 선행 기술로는 3 nm 팹 공정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상황이 불리함에도 중국 정부는 반도체 기술 굴기를 위해서라도 SMIC의 차세대 패터닝 설비 확충과 이후 세대의 기술 선진화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을 게 확실하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자국 생산 반도체의 비중을 7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천명했지만, 2020년 현재 그 수준은 겨우 15%에 불과하다.

SMIC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18% 정도다. SMIC는 16일 미국의 제재조치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화웨이가 현상유지를 하려면 SMIC가 파운드리 물량을 향후 3년간 매년 두 배 이상씩 늘려주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투자 규모를 급속히 늘려 자립화 목표의 달성 시점을 오히려 더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막대한 돈으로 설비 확충을 하는 한편, 한국·대만의 반도체 기술 인력들을 스카우트 하려는 시도 역시 노골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화웨이와 SMIC는 2021년 하반기까지 10 nm 수준의 패터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SMIC와 TSMC 사이에 꾸준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만족될 경우에만 유효한 시나리오다.

TSMC는 中 SMIC와 전략적 공생관계

그렇다면 SMIC와 TSMC의 관계는 장차 어떻게 전개될까? 둘 사이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복잡한 스토리가 깔려있다. 두 회사의 창업자는 미국에 있을 때 반도체 회사인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Texas Instruments, TI)에서 오랫동안 함께 근무했고, SMIC의 창업자가 TSMC의 창업자 밑에서 오랫동안 부하 직원 자격으로 호흡을 맞추었다. TSMC는 1987년, 모리스 창(중국 이름: 張忠謀, 1931년생)이 설립했고, 그는 2018년까지 TSMC의 회장을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SMIC의 창업자 리처드 장(중국 이름: 張汝京, 1948년생)은 TI 퇴직 후, 2000년 SMIC(中芯國際)를 설립하면서 거점을 대만에서 중국으로 옮겨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중고 파운드리 장비를 값싸게 인수해 본격적인 웨이퍼 생산에 돌입했으며, 공격적인 투자와 경영 전략으로 마침내 중국 1위의 파운드리 업체로 부상했다. SMIC는 사세 확장 과정에서 경쟁 관계에 있던 TSMC와의 차별화 전략을 위해, 파운드리뿐만 아니라 로직 IC, 시스템 반도체, DRAM에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갔다.

사실 SMIC의 급속한 확장이 가능했던 것은 장 회장의 로비 능력과 더불어, 기술 굴기를 선언했던 중국공산당 정부의 밀어주기, 그리고 관치 금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TSMC는 소송을 통해 SMIC 지분을 인수해 SMIC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장 회장은 중국 정부에 로비를 펼쳐 TSMC가 경영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정부 펀드(중국투자)로 3억50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최대 주주가 된 중국투자는 2억5000만 달러를 추가로 끌어들였는데 이로써 SMIC는 명실상부한 국유기업이 됐다.

겉으로만 보면,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TSMC는 SMIC를 굉장히 견제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두 회사는 전략적 공생관계였다. 어차피 파운드리 분아에선 TSMC가 월등한 우위를 자랑하니, 상대적으로 저가 제품의 파운드리에 SMIC가 집중하도록 역할을 나누어주었다. 그 대신 SMIC는 반도체 칩의 자체 생산과 영역 확장 과정에서 다시 TSMC의 주요 고객이 되는 구도가 자리 잡았다.

미국의 제재조치가 본격화되던 2019년 상반기만 해도, 화웨이는 다소 자신감을 보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TSMC가 우선적으로 SMIC에 파운드리 물량을 확보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화웨이는 1년쯤 버틸 수 있는 물량을 확보했다.
현재는 TSMC가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며 SMIC와 거리를 벌리고 있는 모양새이지만, 미국의 제재가 느슨해지면 언제든 두 회사는 다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 TSMC가 중국의 파운드리 산업을 물밑에서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TSMC가 SMIC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직간접 관계를 이어 나가는지를 보면 공생의 큰 그림이 차차 드러날 것이다.

초극미세 패터닝 공정이란 '통곡의 벽'

중국의 야심찬 반도체 기술 굴기 국면은 미국의 제재조치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속도가 오히려 빨라질 수 있다. 하지만 눈앞에는 거대한 기술 장벽이 도사리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10 nm 이하부터는 전혀 다른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 반도체 패터닝에는 신뢰도가 높은 레이저 광원이나 플라즈마 발광 같은 특수한 단파장 고품질 광원이 필요하다. 이전까지는 포토리소그래피 (photolithography), 전자빔 리소그래피 (E-beam lithography), 심층 자외선 리소그래피 (Deep UV lithography, DUV)가 그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칩 하나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극자외선 (extreme UV, EUV) 이라는 광원이다. 이 광원의 파장은 13.5 nm이다. 문제는 EUV가 대부분의 물질에 잘 흡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EUV 리소그래피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노광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플라즈마 광원과 그것을 유도하는 정밀 광학계다.

하지만 이전 세대 광원에 비해 광원 생성 및 유도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EUV 기술은 에너지 효율이 0.04% 밖에 안 된다. 이 EUV 노광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회사는 네덜란드의 ASML이 거의 유일하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EUV 시장에서 이 회사 점유율은 85~90%나 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ASML을 ‘슈퍼 을(乙)’이라 부른다. 현 세대 ASML의 EUV 모델은 NXE:3400B인데, 이 장비 한 대의 가격은 대략 1600억원이다. 반도체 라인 하나에 10개 이상의 노광 장비가 들어가게 되니, 라인 하나의 리소그래피 장비에만 무려 1조500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EUV 노광 장비 공급 끊기면 격차 못 줄여 

화웨이와 SMIC는 미국의 제재 조치가 없었다면 이 비싼 ASML의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재 조치 이후 ASML의 장비 역시 대중국 수출이 금지되었다. 화웨이와 SMIC는 이전에 들여 온 노광 장비로 앞으로 최대 1~2년간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급변하는 반도체 기술 시장에서, 2년 이상 격차는 거의 따라잡을 수 없는 초(超)격차로 더욱 벌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중국은 당분간 '버티기 게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선 화웨이가 대략 6~8개월분 반도체 재고와 2년간 버틸 핵심 부품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 ‘기술 자립’을 표방하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극초미세 패터닝 기술 역시, 외국에서 사오거나, 경쟁업체에서 스카우트해온 엔지니어들을 활용하면 해결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10 nm 이하 급, 향후 5 nm 이하 급 패터닝 기술은 돈과 의지만 갖고서 달성할 수 없다. ASML 같은 기업의 초격차를 해소하려면 기초 연구개발, 선행 연구 성과의 축적, 그리고 기술에 대한 상호 신뢰 관계 등 뿌리 깊은 기반이 필요하다. 

또한 EUV가 없으면 패터닝 정밀도는 10 nm 이하로 높아질 수 없다. 현재 14 nm 공정이 최대 역량인 중국의 SMIC가 아무리 인력과 기술을 쥐어짜내더라도, 세상에 없던 EUV를 갑자기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다. 중국 정부가 인내심을 가지고 ASML이 그랬던 것처럼 수십 년에 걸쳐 이런 방식의 기술적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또한 그렇게 장기간을 버티면서 기술적 생태계를 조성하는 사이에 다른 반도체 기업들이 가만히 앉아있을 리도 없다.

10 nm 선에서 멈춰 선, 그나마 수율 보장도 안 되는 SMIC 칩으로 화웨이가 몇 년을 더 버틸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기술 로드맵은 계속 3 nm 이하, 심지어는 원자 단위를 논해야 하는 1 nm 수준으로까지 계속 내려가고 있을 때, 화웨이와 SMIC는 여전히 두 자릿수 나노미터에 멈춰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돈 많은 화웨이와 중국 정부라고 해도, 그리고 선두권 업체들의 핵심 기술 인재를 영입한 SMIC라고 해도, 결국 5년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5년이면 반도체 산업 특성 상, 장비가 노후화될 대로 될 것이고 반도체 칩 수율 관리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독자적 기술·표준으로 갈라파고스化?

중국의 반도체 관련 산업은 아예 독자적인 로드맵과 규격을 채택해 거대한 갈라파고스 섬처럼 변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첨단기술 제재조치는, 비단 트럼프 정권뿐만 아니라 차기 정권에서도 초당적인 기조로 계속 유지될 게 확실하다. 이에 맞서 중국은 독자 기술 규격과 로드맵을 대외적으로 천명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럴 경우, 다음 세대의 반도체 로드맵은 두 평행 세계가 공존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규격이 갈라지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비슷한 것처럼 보였던 기술들도 결국 점점 그 메커니즘이 분화되어, 나중에는 기술적으로 호환이 불가능한 시스템으로 나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수십 년간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은 중단기적으로는 엄청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자국 기술력으로 10년 정도 버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반도체 기술 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져, 그때는 돈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그 초격차를 따라잡기란 거의 불가능해진다.

중국공산당이 꿈꾸는 반도체 기술 굴기는 결국 향후 10년이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일단 10 nm 장벽을 자국 기술로 2025년 이내에 돌파할 수 있느냐가 1차적인 관건이 될 것이다. 미국의 제재조치 고비를 어떻게든 버틴 후 내수시장 위주로 기술 생태계를 보존해 나간다면 중국 쪽에 승산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미중 기술패권싸움이 치열해질 경우 플랜B로서, 갈라파고스화(化)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아예 다른 개념의 반도체 로직 아키텍처를  개발해나갈 것인지가 2차적인 관건이다. 글로벌 분업체제가 본격화된 이후, 기술이나 시장의 갈라파고스화는 대부분 망하는 쪽으로 결론 났다. 중국 지도부가 이런 노선을 선택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모험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게 앞으로 닥칠 최악의 상황은 미국의 제재조치가 반도체뿐만 아니라 중국산 고부가가치 IT제품이나 드론, IoT, 자율주행차 등으로 확대 적용되는 것이다. 중국은 그야말로 자국 내에서 제로섬 게임을 하며 경제성장률을 깎아먹는 방법 외에는 첨단산업을 발전시켜 나갈 방도가 없다. 첨단산업을 뒷받침할 첨단 반도체가 없다면 산업 경쟁력은 답보 상태가 되며, 이는 곧 가격 경쟁력과 연결된다. 미국의 제재가 언젠가 풀리는 시점이 온다 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재기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기술 자립 혹은 신개념 아키텍처 설계·제조, 이것 둘 다 통하지 않게 된다면, 중국은 장차 50년간 미국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생각으로 백기를 들고 투항해야 할지도 모른다.


권석준 KIST 책임연구원/ 공학박사

서울대 공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공부한 뒤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광(光)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의 차세대 IT소자 원천 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으며 올 하반기에 교양 과학서 <빛의 과학>을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