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Bob Woodward)는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로 미국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사임까지 불러온 인물이다. 우드워드는 사건이 일어난 1972년부터 탄핵 위기에 몰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난 1974년까지 동료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과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쳤다. 워터게이트 탐사보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도”라는 찬사를 받았고(뉴욕타임스 편집장을 지낸 Gene Roberts), 신참 기자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전설이 되었다.

번스타인은 1977년 워싱턴포스트를 떠나 다른 매체에서 일했지만, 우드워드는 워싱턴포스트와의 관계를 이어갔다. 현재도 상근직은 아니지만 워싱턴포스트의 ‘협력 편집장’(associate editor) 직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보도 이후 전설의 반열에 오른 우드워드의 위상은 더 이상 평범한 기자와 같을 수 없었다. 일상적 취재업무 혹은 워싱턴포스트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의 길이 아니었다. 우드워드는 통상적인 취재업무에서 벗어나 원하는 주제를 원하는 방식으로 심층 취재할 수 있었고, 필요하면 대통령도 직접 인터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가장 집중적으로 취재한 대통령은 조지 W. 부시였다. 6차례에 걸쳐 11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했고, <Bush at War> (2002년), <Plan of Attack> (2004년), <State of Denial> (2006년), <The War Within: A Secret White House History (2006~2008)> (2008년) 등 4권의 책을 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관해서도 전임자로부터 넘겨받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관한 <Obama’s War>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백악관-의회 관계를 다룬 <The Price of Politics> (2012년)를 집필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대통령 독점 인터뷰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는 모두 46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세부 목차 또는 각 챕터의 부제는 없으며 대체로 트럼프 당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 제30장부터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등장하며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내용이 본격적으로 나오니까, 책 내용의 약 3분의 1은 매우 최근에 벌어진 일을 대상으로 한다.

공개되지 않은 여러 취재원에 근거했지만, 이 책의 독보적인 면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물이라는데 있다. 우드워드는 2019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트럼프와 17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했고 그 중 한 번을 제외하고는 트럼프의 동의하에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받아 참모들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말 그대로 독점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 별다른 제약조건이 없었고, 특정 내용 또는 특정 시점까지의 비공개 합의도 없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친서 27통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도 트럼프 본인이 넘겨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모로 파격적인 인터뷰라 하겠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어떠한 조건도 없이 인터뷰하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평생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을 방식으로 취재가 진행되었다. 우드워드가 가진 위상이나 트럼프의 성향이 맞물린 비범한 결과물이지만, 미국의 정치 및 언론문화의 연장선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미국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와 독점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구글 혹은 유튜브에 ‘Obama exclusive interview’ 또는 ‘Trump exclusive interview’를 검색해 보면 현직 대통령에 대한 독점 인터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대부분 공화당에 우호적인 폭스뉴스를 통해 인터뷰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적대적 매체인 폭스뉴스에도 독점 인터뷰 기회를 주기는 했지만, 매체의 위상에 비하면 빈도는 낮았고,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 폭스뉴스 독점 인터뷰 관련 워싱턴포스트 기사>
어쨌든 현직 대통령이 특정 매체 혹은 특정 기자에게 독점 인터뷰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공정성이나 정부-언론의 관계 측면에서 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정치 및 언론 문화와는 매우 다른 현상이다. 한국 대통령은 특정 매체와의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국내 언론 인터뷰는 2019년이었는데 ‘취임 2주년’이라는 분명한 계기가 있었고, ‘국영방송’ KBS를 통해 진행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국회 탄핵의결로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2017년 1월 어느 유튜브 채널에 나온 게 국내 매체와의 유일한 인터뷰였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에는 특정 매체가 진행 혹은 방송을 담당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과의 대화’ 형식을 취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손석희의 100분 토론’에 출연한 것 정도가 유일한 예외가 아니었나 싶다.

한미 양국의 문화 차이라 할 수도 있지만, 국민들이 특정 매체 혹은 특정 언론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경우와 그런 일은 좀체 없는 경우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은 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입장, 우드워드라는 언론인 개인에 대한 평가 혹은 이번 책 출간과 관련한 언론윤리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

우드워드의 '위상'+트럼프의 '명예욕'

우드워드는 2018년 9월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문제를 다룬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에 대해 당시 트럼프는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런 반응을 보면 우드워드가 백악관에 발도 못 들여 놓게 해야 마땅한데, 트럼프는 도리어 파격적 인터뷰를 허용했다. 우드워드의 신간은 ‘interviewer’ 우드워드가 가지는 독보적인 위상과 ‘interviewee’ 트럼프의 명성에 대한 집착과 경쟁심이 결합한 결과물로 보인다.

우드워드는 현직 대통령에 관한 책을 계속 출판했다. 빌 클린턴에 관하여 2권, 조지 W. 부시에 대하여는 4권, 버락 오바마에 대해 2권을 집필했다. 보통의 기자라면 어떻게든 대통령 독점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우드워드의 경우에는 ‘갑을 관계’가 역전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위기 및 사임으로 몰고 간 적이 있는데다, 현직 대통령에 관해 임기 중에 책을 내는 일을 계속해온 전설적 언론인의 인터뷰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면 현직 대통령 누구라도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전임자들에 대한 경쟁심을 감추지 않고, 위대한 대통령 4명(워싱턴, 제퍼슨,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얼굴이 새겨진 러시모어 산에 자신의 얼굴을 조각하고 싶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트럼프 입장에서 우드워드가 자기를 인터뷰하지 않는 것은 더욱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우드워드의 전작 <Fear>는 트럼프 행정부를 다루면서도 본인을 직접 인터뷰하지 않고 다른 취재원을 기반으로 썼다. 전투적이고 논쟁적인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성향에 비추어 보면, 트럼프는 선공을 날린 우드워드를 직접 상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 출간 소식이 전해진 직후 9월 10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는 대부분 전화로 했고 녹음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드워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우드워드의 이름은 여러 해 동안 들어왔고 존중하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하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지만, 그와 대화를 하는 것이 흥미로운 일일 것 같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브리핑>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왜 숨겼느냐는 질문에 대한 트럼프의 답변 첫 머리에 나온 언급이지만 우드워드와 인터뷰를 한 동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코로나19 발언 묵인, 언론윤리 논란

우드워드의 이번 책은 11월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출간일이 9월 15일인데 올해 노동절인 9월 7일과 첫 번째 대선 토론회가 열리는 9월 30일의 중간 시점이다. 미국 대선이 본격화되는 시점은 9월의 첫 번째 월요일인 노동절(Labor Day)로 잡는다. 공화·민주 양당의 전당대회와 후보 지명 절차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고 대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다.
노동절 직후 여론조사 결과가 그대로 본선 결과로 이어진 확률이나, 반대로 노동절에 뒤지고 있던 후보가 역전승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되는지 분석하는 언론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1987년 헌법이 개정돼 12월에 대선을 치르게 되면서 ‘추석 민심’과 그 전후의 여론조사 추이가 주목받는 것과 비슷하다. (2022년부터는 3월에 대선에 실시되니 ‘설날 민심’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드워드는 자신이 거의 50년의 세월 동안 닉슨부터 트럼프까지 9명의 대통령을 취재했으며, 이는 미국 대통령을 지낸 총 45명 중 20%에 해당한다고 밝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수행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다.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부적합한 사람이다.” 이 책의 내용, 우드워드가 지금 시점에 이 책을 낸 이유는 결국 이 마지막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 우드워드는 이번 책 출간과 관련해 언론윤리를 저버렸다는 뜻밖의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월 7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치명적이라는 점을 시인했다는 내용이 책에 나오기 때문이다. 출간 시점까지 인터뷰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공개 합의도 없으니, 책을 쓰기 위해 기획한 인터뷰였을망정 우드워드가 마음만 먹으면 훨씬 일찍 보도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언론윤리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을 그때 바로 보도했다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미국 사회가 알게 되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드워드는 내 발언을 몇 달이나 묵혀두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나쁘거나 위험했다면 왜 인명을 구하기 위해 즉시 보도하지 않았나?”라고 비난했다. 본인은 숨김없이 얘기해 주었는데 우드워드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는 역공을 펼친 것이다.

이에 대해 우드워드는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에 관해 늘 문제가 되는 것인데, 해당 발언이 사실인지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워싱턴포스트 기사 링크>
즉 트럼프가 ‘코로나19가 치명적이다’라고 발언을 했더라도 그 자체부터 사실 확인이 필요하고, 실제로 트럼프와 문제의 인터뷰를 한지 여러 달이 지난 5월 무렵에야 트럼프가 1월 정보당국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해당 발언이 나왔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우드워드는 또한 트럼프의 발언을 즉시 알리는 것보다 전체적인 맥락을 11월 대선 전에 독자에게 제공해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하며, 인터뷰 내용을 바로 기사로 냈다면 트럼프가 더 이상 인터뷰에 응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속보가 아니라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점을 유권자에게 선거 직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는 설명이다.

언론매체라 하더라도 발행주기에 따라 제작의 호흡이나 중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드워드는 일상적인 기사 작성에서 은퇴한지 오래 되었고 단행본 출간을 위해 인터뷰를 한 것이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은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우드워드가 트럼프의 인터뷰를 즉시 보도했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가짜 뉴스’라 부인하고 코로나19 대응자세 역시 바꾸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이 워낙 심각하고 최근 사망자도 20만 명에 육박해 취재윤리 논란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책 출간 이후 여러 방송매체와 인터뷰를 할 예정인 우드워드 역시 해명을 위해 고심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또한 저널리즘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김정은과 친서 27개, 정서적 유대관계

우드워드의 신간에서 아무래도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한국과 관련된 사항, 특히 주한미군을 비롯한 안보 이슈 그리고 북한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한국 혹은 북한과 관련된 내용을 주로 다루는 것은 7개 챕터이다. 전체 46개 챕터 중 15% 이상이니 적지 않은 비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내세운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초기부터 북핵 문제 해결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제6장) 취임으로부터 불과 6일 후인 2017년 1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NSC 아시아정책담당 보좌관 매트 포팅어(Matt Pottinger)를 호출한다.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북한 문제가 임기 중 가장 중요하고 위험하며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될 것이며 32세의 젊은 리더 김정은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개발 중’이란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말한 뒤 북한문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포팅어 보좌관은 크게 3가지, 세부적으로 9개의 옵션을 준비한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부터 CIA 비밀작전을 통해 체제전복을 시도하는 것까지 다양한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CIA 국장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현 국무장관) 또한 3월 초에 북한문제 전문가 앤드루 김(국내 언론에는 이렇게 알려졌으나 이 책에서는 ‘Andy Kim’으로 표기됨)을 불러 상의한다. 앤드루 김은 폼페이오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고 북한 미션 센터장 직을 수락하며 이후 북미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선 주둔 필요성이나 비용 분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이 일관되게 드러난다.(제12장) 당시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과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는 트럼프에게 주한미군의 가치를 납득시키는데 실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2017년 11월 트럼프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 평택에 새로 조성된 캠프 험프리스를 보여주며 설득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주한미군 사령관 빈센트 브룩스와 함께 평택 미군기지의 규모를 워싱턴DC의 지리와 비교하여 부각하는 자료를 만들었다. 예컨대 한국이 미군기지 조성에 100억 달러를 투입했는데 이는 전체 비용 중 92%에 해당한다는 자료를 제시하는 등 다양하게 설득할 준비를 한다. 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왜 한국이 전액을 부담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제26장, 제27장에서 계속 나온다.

한편 우드워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고받은 27개의 친서를 입수했으며 그 중 2개를 뺀 25개가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드워드는 그 서신들이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 간의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기까지 6차례 서신이 교환된다.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두 사람 사이의 친서 왕래는 급증하는데 2019년 2월 27일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약 8개월 동안 15차례 서신이 왕래한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에는 서신의 빈도가 뜸해져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회동까지 3차례, 판문점 회동 이후 3차례 서신이 왕래한다. 2019년 8월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이후로 두 사람 사이의 교류는 단절된다. 이후 2020년 3월 트럼프는 코로나19에 관해 우려하는 서신을 김정은에게 보냈고 이에 대해 좋은 회답(“nice note”)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북한 당국은 이를 부인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문제 접근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개인적 교류 및 서신 왕래가 전통적 외교 문법에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반복해서 강조한 것처럼 미국과 북한은 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이는 분명한 성과이다. 외교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시도라도 할 가치가 있고, 트럼프가 시도한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트럼프 시대에 관해 아직 평가할 수 없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김정은이 점점 위협을 높여가는 상황에서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충실하기로 한 약속이 유효할 것인지에 관하여는, 트럼프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 ‘두고 볼’(We’ll see) 문제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 대비해야 

우드워드의 책에는 2017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으로 인한 전쟁 위기와 이후 2차례에 걸친 정상회담 과정에서 있었던 내부 사정, 트럼프와 김정은 간에 오간 친서 및 둘 사이의 알려지지 않은 대화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트럼프가 우드워드에게 일부 과장해서 말했을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북미 정상회담의 직접 당사자가 한 언급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공개의 적절성 여부는 차치하고 27통의 친서 또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과거’이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의 행동을 결정함에 있어 과거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일을 근거로 미래를 준비할 수는 없다.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든 하노이 정상회담은 결렬로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주류 정치인과 달리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탑다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트럼프 외에 김정은과 회담에 나설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희망하는 사람들로서는 아웃사이더인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열린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 그 가능성은 역사 속으로 묻힐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현재 여론조사 결과상 열세를 딛고 재선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정상회담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초선 대통령과 재선 대통령이 같을 것이라 기대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논리는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이 당선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물론 민주당 주류인 바이든은 전통적 접근방식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은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냈고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를 내세운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이었다. 그런 바이든이 백악관 입성 후에도 과거와 똑같을 것이라 단정하는 것 또한 오류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이다. 외교와 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게임인데, 다른 당사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움직임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2017년 미국과 북한이 전쟁 직전까지 갔던 내용은 섬뜩하기까지 하며 서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적대국가가 위치한 현실을 깨닫게 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있었던 일을 잘 복기하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시도를 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몫일 것이다.


유정훈 필자

변호사(한국 및 미국 뉴욕 주). 2011년 미국 연수 당시 버락 오바마에 맞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어서 미국 정치·선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미국 정치와 법에 관한 ‘덕질’을 계속하고 있다. 메디치미디어가 출간한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를 공저했다. 서울신문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